디모데후서 2장 20-2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디모데후서 2:20-21
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21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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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디모데에게 거짓 가르침과 불의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주인이 귀히 쓰는 그릇이 된다고 말한 구절이다. 한국 교회에서 "귀히 쓰는 그릇"이라는 표현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디모데후서는 전통적으로 바울이 생애 말기에 옥중에서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로 이해된다. 근대 학계에는 목회서신의 저자를 달리 보는 견해도 있다.
2장 후반에서 바울은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가르치는 후메내오와 빌레도를 경계한다(2:17-18). 이어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서 있으니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불의에서 떠나라고 말한다(2:19). 20-21절은 이 권고를 집안의 그릇에 빗댄 비유이다. 이 권고는 22절의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로 이어진다.
해석
- 교회 안의 섞임으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큰 집"을 눈에 보이는 교회로, 천히 쓰는 그릇을 거짓 교사로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안에 참된 신자와 그렇지 않은 이가 섞여 있다는 논지에 이 비유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이런 것"의 범위: 원문의 "이런 것들에서"가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읽기가 있다. 하나는 거짓 교사와 그 가르침을 가리킨다고 보는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19절의 불의 전반을 가리킨다고 보는 읽기이다. 앞의 읽기는 거짓 가르침을 멀리하라는 권면을, 뒤의 읽기는 개인의 거룩한 삶을 강조한다.
- 성화의 관점: 웨슬리 신학 전통의 감리교·성결교는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에서 성결(죄에서 깨끗해짐)을 추구해야 할 신자의 책임을 강조한다. 개혁주의 전통은 이를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 성화(거룩해져 감)에 신자가 응답하는 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논쟁과 쟁점
- 예정론과의 관계: 로마서 9장 18-23절에도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이 나온다. 칼빈주의 쪽은 두 본문이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책임을 함께 말한다고 본다. 아르미니우스주의 쪽은 21절을 그릇의 쓰임이 미리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근거로 들기도 한다.
- 분리의 근거인가: 20세기 근본주의의 일부는 신학이 다른 교회와 교제를 끊는 '분리'의 근거로 이 구절을 인용했다. 반대쪽은 이 구절이 교회를 떠나라는 지시가 아니라 거짓 가르침과 죄에서 자신을 지키라는 권면이라고 본다.
- 재료의 위계로 읽는 문제: 금·은 그릇과 나무·질그릇을 은사나 직분의 높낮이로 읽는 것은 문맥을 벗어난 해석이라는 지적이 있다. 21절은 그릇의 쓰임을 재료가 아니라 깨끗함에 따라 말하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에서
"귀히 쓰는 그릇", "주님께 쓰임받는 그릇"이라는 표현은 임직식, 헌신예배, 신학교 졸업 예배의 설교와 대표기도에서 자주 쓰인다.
함께 읽을 구절
- 디모데후서 2:19, 22: 바로 앞뒤의 권면
- 로마서 9:21: 토기장이와 그릇 비유
- 고린도후서 4:7: 질그릇에 담긴 보배
- 고린도후서 7:1: 자신을 깨끗하게 하라는 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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