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로마서 9장 20-2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9:20-21, 토기장이의 권한, 토기장이와 진흙,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

20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지음 받은 것이 지은 이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할 수 없다며 토기장이의 권한을 말하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을 다루는 로마서 9장의 핵심이어서 예정론 논쟁에서 가장 무겁게 다뤄진다.

문맥

로마서 9~11장은 메시아를 거부한 이스라엘의 운명을 다룬다. 바울은 하나님이 야곱과 에서, 모세와 바로 사이에서 자기 뜻대로 긍휼을 베푸셨다고 말한 뒤, "그러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는 반론을 예상한다. 20~21절은 그 반론에 대한 대답이다. 토기장이 비유는 이사야 29:16, 45:9와 예레미야 18장에 나오는 구약의 그림을 가져온 것이다.

해석

  • 개인의 선택과 유기로 읽기: 칼빈주의 전통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구원에, 어떤 사람은 정당한 심판에 두시는 주권적 결정을 말한다고 읽는다. 인간은 그 결정에 따지고 들 자격이 없다는 것이 20절의 요지라고 본다.
  • 역사 속 역할로 읽기: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전통의 여러 학자는 9장이 개인의 영원한 운명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구원 역사에서 맡은 역할을 말한다고 본다. 예레미야 18장에서 토기장이가 그릇을 다시 빚듯 하나님의 결정도 사람의 반응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든다(예레미야 18:7-10).
  • 공동체적 읽기: "그릇"이 집단으로서의 이스라엘과 교회를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9~11장이 "온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끝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논쟁과 쟁점

22절의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인지, 스스로 그렇게 된 것인지가 오래된 쟁점이다. 헬라어 동사가 수동태와 중간태(스스로 하는 뜻)로 모두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 구절을 질문 자체를 금하는 말로 쓰는 것은 지나치다는 지적이 있다. 욥기와 시편처럼 하나님께 묻고 탄식하는 신앙도 성경에 있다는 것이다.

함께 읽을 구절

함께 보기 6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

로그인하고 토론에 참여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