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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캐리(William Carey, 1761~1834)는 영국의 침례교 목사이자 인도 선교사이다. 해외 선교의 의무를 주장한 저술과 선교회 설립으로 '근대 선교의 아버지'로 불린다.

생애

잉글랜드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구두 수선공의 도제가 되었고, 청년기에 회심하여 칼빈주의 계열의 특수침례교(Particular Baptist)에 속하게 되었다. 구두 일을 하면서 라틴어·그리스어·히브리어 등을 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몰턴과 레스터에서 목사로 일했다.

1792년 소책자 『이교도 회심을 위해 수단을 사용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의무에 관한 연구』를 펴냈다. 같은 해 노팅엄에서 이사야 54장을 본문으로 설교했는데, 이 설교의 요지로 전해지는 "하나님께 큰일을 기대하라, 하나님을 위해 큰일을 시도하라"는 말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해 10월 케터링에서 침례교선교회(Baptist Missionary Society)가 세워졌고, 캐리는 이듬해인 1793년 인도로 떠났다. 그는 이후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1834년 세람포르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선교의 신학적 근거 제시: 당시 일부 칼빈주의자 사이에는 이방인 회심은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하실 일이며, 교회가 따로 나설 일이 아니라는 견해가 있었다. 캐리는 마태복음 28장 18-20절의 지상명령이 사도들에게만이 아니라 오늘의 교회에도 주어진 의무라고 주장하였다.
  • 세람포르 사역: 1800년부터 덴마크령 세람포르에서 조슈아 마시먼, 윌리엄 워드와 함께 일했으며, 이 세 사람은 '세람포르 삼인조'로 불린다. 같은 해 첫 인도인 개종자 크리슈나 팔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 성경 번역과 교육: 1801년 벵골어 신약성경을 펴냈다. 그와 동료들은 인도와 아시아의 여러 언어로 성경 전체 또는 일부를 번역·출판하였다. 포트윌리엄 대학에서 벵골어 등을 가르쳤고, 1818년 세람포르 대학 설립에 참여하였다.
  • 사회 활동: 과부를 남편의 화장 장작에 함께 태우던 관습인 사티(sati)의 폐지를 주장하였고, 사티는 1829년 영국령 인도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다. 식물학에도 관심이 깊어 인도 농업원예협회 설립에 관여하였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캐리가 직접 한국과 관계를 맺은 기록은 없다. 다만 그의 저술과 침례교선교회 설립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여러 선교 단체가 잇따라 세워졌다. 이 가운데 런던선교회도 이 흐름 속에서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버트 토마스가 이 단체 소속이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캐리는 선교 집회와 선교사 파송 예배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다. "큰일을 기대하고 큰일을 시도하라"는 문구는 교단을 가리지 않고 선교 표어로 널리 인용된다.

평가

개신교 선교 역사에서 캐리는 교회가 조직을 갖추고 해외 선교에 나서도록 이끈 인물로 평가된다. 성경 번역과 교육, 사회 개혁을 함께 추진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비판도 있다. 아내 도로시는 인도에 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정착 초기 어려움 속에서 정신 질환을 앓았다. 이 때문에 사역을 위해 가족을 희생시켰다는 지적이 있다. 짧은 기간에 많은 언어로 번역하다 보니 일부 번역의 질이 고르지 않았다는 평가도 있다. 말년에는 세람포르 선교부와 영국 본부 사이에 운영 문제로 갈등이 생겨 한동안 관계가 갈라지기도 하였다. 또한 영국의 식민 지배라는 환경 속에서 이루어진 선교였다는 점을 비판적으로 보는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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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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