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0장 11-15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10:11-15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자신을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선한 목자'로 소개하며, 위험 앞에서 달아나는 삯꾼과 대비한 말씀이다. 십자가 죽음의 의미, 속죄의 범위 논쟁, 목회자의 자세를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예수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을 고친 뒤, 그 사람을 쫓아낸 바리새인들과 나눈 대화가 이어지는 대목이다. 요한복음 9:40-41의 대화가 장 구분 없이 10장으로 넘어온다. 10장 1-10절에서 예수는 양의 우리, 문, 도둑과 강도의 비유를 들고 "나는 양의 문이라"고 말한다. 이어 11절에서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하는데, 이는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오는 "나는 …이다" 말씀 가운데 하나다. 16절에서는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17-18절에서는 목숨을 스스로 버리고 다시 얻는 권세를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분쟁이 일어난다(19절). 구약에도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목자로, 백성을 돌보지 않은 지도자들을 나쁜 목자로 그린 본문(에스겔 34장 등)이 있어, 이 구절의 배경으로 함께 읽힌다.
해석
- 십자가 예고로 읽기: 여러 교단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를 십자가 죽음에 대한 예고로 읽는다. '위하여'는 양을 대신하는 속죄(죄의 값을 대신 치름)로 이해된다. 18절과 함께 읽어, 그 죽음이 강요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것이라는 점도 강조된다.
- 선한 목자와 삯꾼의 대조로 읽기: '선한'으로 옮긴 그리스어 '칼로스'에는 '참된', '훌륭한'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이 말은 품삯을 받고 일하다가 이리가 오면 달아나는 사람과 대비되는 참 목자를 가리킨다고 설명된다.
- 서로 앎의 관계로 읽기: 14-15절은 목자와 양이 서로 아는 것을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아는 것에 견준다. 이 '앎'은 정보를 아는 것을 넘어 인격적인 사귐을 뜻한다고 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논쟁과 쟁점
- 속죄의 범위: 칼빈주의 전통, 특히 도르트 신조를 따르는 개혁주의 쪽에서는 "양을 위하여"를 '제한 속죄(한정 속죄)'의 근거 가운데 하나로 든다. 제한 속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택함받은 사람들을 구원하려는 것이었다는 가르침이다. 반면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신학을 따르는 감리교·성결교 등에서는 이 구절이 양을 위한 죽음을 말할 뿐 다른 사람을 배제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이들은 요한복음 3:16, 요한일서 2:2 등을 들어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해 죽었다는 보편 속죄를 주장한다.
- 목회자에게 적용하는 문제: 이 구절에서 말하는 이는 예수 자신이다. 그래서 목회자의 자격과 자세를 말하는 데 곧바로 옮겨 쓰면 그리스도의 고유한 사역이 흐려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반대로 신약이 교회 지도자에게도 양 떼를 치라고 말하는 만큼(요한복음 21:15-17, 베드로전서 5:2-4) 그렇게 적용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목사(牧師)라는 직함과 '목회(牧會)'라는 말에는 모두 양을 친다는 뜻의 '목(牧)' 자가 들어 있어, 이 구절과 같은 목자 비유를 담고 있다. 이 구절은 목사 위임식이나 임직식 설교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또 '삯꾼 목자'라는 표현은 사명보다 보수나 자리에 매인 목회자를 비판하는 말로 교회 안팎에서 널리 쓰인다. 같은 낱말을 개역한글은 '삯군'으로, 개역개정은 '삯꾼'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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