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한흠
인물
옥한흠(玉漢欽, 1938~2010)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목사이다. 사랑의교회를 세웠고, 《평신도를 깨운다》를 써서 지역 교회의 평신도 제자훈련을 한국 교회에 널리 퍼뜨렸다.
생애
옥한흠은 경상남도 거제에서 증조부 때부터 4대째 기독교를 믿어 온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해군사관학교에 지원했으나 신체검사에서 고혈압 판정을 받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 입시에도 잇따라 실패해 방황하다가 목회자의 길을 소명으로 받아들였다고 알려져 있다. 성균관대학교와 총회신학교(지금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다. 그 뒤 은평교회 전도사를 거쳐 성도교회에서 사역했고, 1972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신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웨스트민스터신학교에서는 평신도 지도자 훈련을 다룬 논문으로 목회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학 중 가톨릭 신학자 한스 큉의 《교회론》을 읽고, 모든 평신도가 세상으로 보냄받은 예수의 제자라는 생각에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1978년 7월 강남은평교회를 개척했고, 1981년 교회 이름을 사랑의교회로 바꾸었다. 2003년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 원로목사가 되었으며, 후임은 오정현 목사이다. 2010년 9월 2일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사랑의교회 안성수양관에 묻혔다.
사역과 업적
- 제자훈련 목회: 소그룹에서 평신도를 기르는 제자훈련을 목회의 중심에 두었다. 1984년 그 경험을 정리해 《평신도를 깨운다》를 펴냈다. 이 책은 오랫동안 꾸준히 팔린 스테디셀러이며, 영어·중국어·일본어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 국제제자훈련원과 CAL 세미나: 책을 읽은 목회자들이 세미나를 요청하자 1986년 3월 세미나실(지금의 국제제자훈련원)을 세웠다. 같은 달 사랑의교회에서 첫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CAL 세미나)를 열었다.
- 교회 연합과 갱신: 교회갱신을위한목회자협의회(교갱협)를 이끌었다. 1998년에는 교단을 넘어선 목회자 연합 단체인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창립했고, 2007년까지 대표회장으로 활동했다.
- 사회봉사: 연변과학기술대학 명예이사장을 지냈다. 소년소녀 가장 돕기, 북한 어린이 돕기, 장애인 선교, 호스피스 선교에도 참여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대학생선교회 같은 대학생 선교단체가 주로 하던 제자훈련을 지역 교회 목회에 들여온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교회 운영의 중심을 바꾸려 했다. 교리보다 복음을, 지도자보다 교인을, 대그룹보다 소그룹을, 행사보다 양육을 앞세웠다. CAL 세미나에는 합동 교단뿐 아니라 통합·고신·감리교 등 다른 교단 목회자도 많이 참여했다. 이를 통해 제자훈련은 교단을 넘어 한국 교회에 퍼졌다.
평가
보수 교단에 속했지만 보수 복음주의 진영과 진보 진영 양쪽에서 존경받은 드문 목회자로 평가된다. 정년보다 앞서 은퇴하고 은퇴 뒤에는 한국 교회 전체의 갱신을 호소한 점도 자주 언급된다. 한편 그가 이끈 제자훈련에 대해서는 평가가 갈린다. 교회를 평신도 중심으로 바꾸었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교회와 세상을 나누어 보는 이원론을 넘어서지 못하고 개인 신앙에 치우쳤다는 비판도 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 옥한흠 목사는 누구인가? - 국민일보
- 옥한흠 작가 소개 - 교보문고
- [부고] '사랑의 교회' 개척 옥한흠 원로목사 소천 - 서울신문
- 부고 / '사랑의 교회' 개척한 옥한흠 원로목사 소천 - 한국일보
- 옥한흠 - 위키백과
- 옥한흠 - 나무위키
- 평신도를 깨워라 - 뉴스앤조이
- 옥한흠 목사 기념 사이트 언론 보도 - 사랑의교회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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