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인물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1560~1609)는 네덜란드 개혁교회 목사이자 레이던 대학교 신학 교수이다. 칼빈주의 예정론에 이견을 내어 '아르미니우스주의'라는 이름의 기원이 되었다.
생애
네덜란드 아우더바터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후원자들의 도움으로 공부하였다. 레이던 대학교에서 배운 뒤 암스테르담 상인들의 후원을 받아 제네바와 바젤에서 유학하였다. 제네바에서는 장 칼뱅의 후계자 테오도르 베자에게 배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귀국한 뒤 1588년부터 암스테르담에서 목사로 일하였고, 1603년 레이던 대학교 신학 교수가 되었다. 1609년 레이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아르미니우스는 예정론, 곧 하나님이 누가 구원받을지를 미리 정하셨다는 가르침을 두고 동료 교수 프란시스쿠스 고마루스와 논쟁하였다. 그는 하나님이 믿을 사람을 미리 아시고 그들을 택하셨다고 보았다. 또 그리스도의 속죄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며,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사람은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와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였다.
그가 죽은 뒤 1610년 지지자들이 다섯 조항의 '항론서'를 냈다. 이 때문에 이들은 항론파라 불린다.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도르트 회의(1618~1619)에서 항론파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도르트 신조를 채택하였다. 이 신조가 이후 칼빈주의 구원론을 대표하는 문서가 되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아르미니우스의 사상은 존 웨슬리를 거쳐 한국에 전해졌다. 웨슬리는 선행 은총(사람이 믿기 전에 먼저 주어지는 은혜) 개념을 중심으로 그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이 흐름이 웨슬리 신학이다. 기독교대한감리회와 성결교 계열 교단, 구세군 등이 이 전통에 서 있다. 오순절 계열도 구원론에서 대체로 이 쪽에 가깝다고 평가된다.
반면 한국 개신교에서 교세가 큰 장로교는 대부분 칼빈주의 전통을 따른다. 그래서 한국 교회에서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예정과 자유의지 논쟁, 성도의 견인(참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끝까지 믿음을 지킨다는 가르침) 논쟁에서 칼빈주의와 대비되는 입장으로 자주 다루어진다.
평가
개혁주의 쪽은 그의 사상이 하나님의 주권을 약하게 하고, 구원을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처럼 만든다고 비판한다. 도르트 회의의 판단도 이 관점을 따른다.
웨슬리 전통과 그를 지지하는 쪽은 다르게 본다. 그가 은혜의 우선성을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람의 책임을 함께 설명하려 했다고 평가한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아르미니우스 자신의 견해와 후대 '아르미니우스주의'가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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