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르 베자
인물
테오도르 베자(1519~1605)는 프랑스 출신 종교개혁자이다. 장 칼뱅의 뒤를 이어 제네바 교회를 이끌었고, 그리스어 신약성경 편집과 개혁파 신학의 체계화로 알려져 있다.
생애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그리스어 학자 멜히오르 볼마르에게 배웠고, 오를레앙에서 법학을 공부했다. 젊은 시절에는 라틴어 시인으로 이름을 알렸다. 1548년 큰 병을 앓은 뒤 개신교 신앙으로 돌아섰고, 같은 해 제네바로 옮겼다. 1549년부터 스위스 로잔 아카데미에서 그리스어를 가르쳤다. 1559년 제네바 아카데미가 세워지자 초대 학장을 맡았다. 1564년 장 칼뱅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제네바 목사회 의장으로 교회를 이끌었고, 1605년 제네바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성경 본문 연구: 1565년부터 여러 차례 그리스어 신약성경 판을 펴냈다. 라틴어 번역과 주해(풀이)를 함께 실었고, 이 판들은 뒷날 킹제임스 성경 번역자들이 참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가지고 있던 고대 사본은 1581년 케임브리지 대학에 기증되어 '베자 사본'으로 불린다.
- 신학의 체계화: 칼뱅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체계화했다. 특히 예정론을 신학 체계의 중심에 두고 논리적으로 정리했다. 그래서 '개혁파 정통주의'의 기초를 놓은 인물로 평가된다.
- 교회 대표 활동: 1561년 프랑스 푸아시 회의에서 프랑스 개신교(위그노)를 대표해 천주교 측과 토론했다.
- 저항권 이론: 1572년 위그노 학살 이후 『위정자의 권리에 관하여』(1574)를 썼다. 이 책에서 폭정을 행하는 군주에게 하위 관리들이 합법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 찬송과 전기: 클레망 마로가 시작한 프랑스어 운율 시편 찬송을 완성했다. 이 찬송집은 '제네바 시편가'로 불린다. 칼뱅의 전기도 썼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베자가 한국 교회에 직접 영향을 준 기록은 찾기 어렵다. 다만 그가 정리한 개혁주의 신학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같은 후대 신앙고백으로 이어졌다. 이 신앙고백들은 한국 장로교의 교리적 기준이 되었고, 그 과정을 거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신학교와 칼빈주의 논의에서도 칼뱅의 계승자로 다루어진다. 신약 본문 논쟁에서는 그의 그리스어 판이 '공인본문'(전통적으로 쓰여 온 그리스어 본문) 계보의 하나로 언급된다.
평가
개혁파 전통에서는 칼뱅의 유산을 지키고 제네바를 개혁교회 교육의 중심지로 만든 인물로 높이 평가한다. 반면 비판도 있다. 20세기 일부 학자들은 베자가 예정론을 지나치게 앞세워 칼뱅 신학을 경직된 체계로 바꾸었다고 보았다. 이른바 '칼뱅 대 칼뱅주의자' 논쟁이다. 다른 학자들은 이 견해가 연속성을 과소평가한다고 반론한다. 또 그는 1553년 이단으로 몰려 처형된 세르베투스 사건에 대해, 이단을 국가가 처벌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변호했다. 이 때문에 종교적 관용의 관점에서 비판을 받는다.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세운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가 제네바에서 그에게 배웠다는 점도 자주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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