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 부흥
역사
아주사 부흥은 1906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아주사 거리 312번지에서 흑인 설교자 윌리엄 J. 시모어가 이끈 부흥 집회이다. 현대 오순절 운동이 시작된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배경
20세기 초 미국의 성결 운동 안에는 성결(죄에서 벗어나 거룩해지는 체험)에 더해 더 깊은 성령 체험을 바라는 흐름이 있었다. 캔자스주 토피카와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활동한 설교자 찰스 파햄(Charles F. Parham)은 방언을 성령세례의 성경적 증거로 가르쳤다. 1904~1905년 영국 웨일스에서 일어난 부흥 소식도 미국에서 부흥을 구하는 기도를 북돋웠다고 알려져 있다.
윌리엄 J. 시모어(William J. Seymour, 1870~1922)는 '시무어'라고도 적는다. 루이지애나에서 해방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고, 휴스턴에서 파햄의 성경학교 강의를 들은 성결 운동 계열 설교자였다. 당시 인종 분리 관행 때문에 강의실 안에 앉지 못하고 복도에서 들었다고 전해진다.
전개
- 1906년 2월: 로스앤젤레스의 한 성결 계열 교인이 추천해 시모어는 줄리아 허친스(Julia Hutchins)가 세운 작은 교회에 한 달 일정으로 초청되었다. 그는 2월 22일 도착했다. 그러나 방언이 성령 충만의 첫 증거라고 설교하자 교회 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더는 그곳에서 설교하지 못했다.
- 1906년 봄: 시모어는 교인 에드워드 리(Edward Lee)의 집에 머물며 기도했다. 이어 노스 보니브레 거리에 있는 리처드·루스 애즈베리 부부의 집에서 기도 모임을 이끌었다.
- 1906년 4월 9일: 이 모임에서 몇몇 참석자가 방언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임은 적어도 사흘 동안 밤낮으로 이어졌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 1906년 4월 중순: 모임은 아주사 거리 312번지의 옛 아프리카감리교회(AME) 건물로 옮겨 갔다. 이 공동체는 '사도적 신앙 선교회'(Apostolic Faith Mission)라는 이름을 썼다.
- 1906년 4월 18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이 집회를 '기이한 방언의 소동'이라는 제목으로 비판적으로 보도했다. 이것이 일반 언론의 첫 보도로 꼽힌다.
- 1906년 9월: 선교회는 신문 『사도적 신앙』(The Apostolic Faith)을 펴내 무료로 나눠 주었다. 첫 호는 5천 부였고 1907년에는 4만 부까지 늘었다고 한다.
- 1908년 무렵: 시모어는 제니 에번스 무어(Jennie Evans Moore)와 결혼했다. 이후 신문을 함께 편집하던 클라라 럼(Clara Lum)과 신문 운영과 우편 발송 명단을 두고 오래 갈등했다.
집회는 거의 하루 종일 이어졌다. 흑인과 백인이 함께 예배했다는 점이 당시로서는 눈에 띄었다. 참석자 가운데에는 성결 운동 출신뿐 아니라 침례교, 메노나이트, 퀘이커, 장로교 배경의 사람들도 있었다. 집회가 가장 활발했던 때는 1906~1909년의 약 3년으로 본다. 넓게는 1915년 무렵까지 이어졌다고 보며, 끝난 해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는다.
결과와 영향
아주사 부흥의 소식은 방문자들과 『사도적 신앙』을 통해 미국 각지와 유럽,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로 퍼졌다. 이런 확산 때문에 이 집회는 현대 오순절주의의 요람으로 불린다. 한국의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같은 오순절 계열 교단도 넓게 보면 이 흐름 위에 있다.
정작 시모어는 1912년 무렵 운동의 중심에서 밀려났다. 신문을 둘러싼 갈등, 방언을 성령세례의 첫 증거로 보던 자신의 가르침에서 물러선 일, 오순절 운동 안의 인종 갈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평가
오순절·은사주의 쪽은 아주사 부흥을 성령의 은사가 회복된 사건으로 보고, 인종과 계층을 넘어선 집회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오순절 운동의 기원이 여럿이며 아주사 부흥은 그중 하나라는 견해도 힘을 얻고 있다. 지역에 따라서는 웨일스 부흥이 비슷한 역할을 했다고 본다.
당시 언론과 같은 성결 운동 안의 일부는 이 집회를 광신적이라고 비판했다. 교리 면에서는 방언을 성령세례의 증거로 보는 가르침이 쟁점이다. 오순절 교단은 이 가르침을 받아들인다. 반면 개혁주의 전통의 일부는 은사 중지론 입장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체험이 말씀보다 앞선다는 우려를 밝히기도 한다. 이 논쟁은 은사 중지론과 지속론 문서에서 다룬다. 한국 교회사에서는 거의 같은 시기에 일어난 1907년 평양 대부흥과 견주어 다루기도 한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13곳
- William Seymour and Azusa Street Revival - Timeline Event (ARDA)
- Azusa Street Revival (EBSCO Research Starters)
- Azusa Street Revival 1906 (Revival Library)
- Azusa Street Revival (1906-1909) (BlackPast)
- Azusa Street Revival (ReligionFacts)
- Azusa Street revival: Historiography of Pentecostalism (Christian Century)
- "Weird Babel of Tongues" (The Tongues Project)
- On April 9, 1906, the Azusa Street Revival begins in Los Angeles (California African American Museum)
- 아주사 스트리트 부흥 (위키백과)
- 18세기 이후 부흥운동 (기독일보)
- (28) 아주사 부흥운동 - 박용규 교수, 부흥현장을 가다 (평양대부흥)
- 오순절 교단의 요람 '아주사 부흥운동' (미주중앙일보)
- 강순영 목사의 부흥을 사모하며(13) 아주사 Street 부흥운동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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