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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37편 7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시편 37:7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악인이 잘되는 현실 앞에서 속을 끓이지 말고 하나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라고 권하는 구절이다. 억울함과 고난 속에서 인내하라는 권면을 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시편 37편은 표제에 "다윗의 시"로 적힌 지혜시다. 지혜시는 삶의 이치를 가르치는 시를 말한다. 이 시는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대로 연의 첫 글자를 맞춘 알파벳 시(답관체)로, 대체로 두 절마다 다음 글자로 넘어간다. 7절은 넷째 글자로 시작하며, 첫 단어가 "잠잠하라"이다. 칠십인역과 라틴어 불가타 성경에서는 이 시가 36편으로 매겨져 있다.

1절의 "불평하지 말며"라는 말이 7절과 8절에서 되풀이된다. 이 반복을 따라 악인의 성공을 보며 분해하는 사람에게 주는 권면이 시 전체를 꿰뚫는다. 시인은 악인의 형통이 잠깐이며 여호와를 기다리는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말한다(9·11절). 바로 앞의 시편 37편 5절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와도 짝을 이룬다.

해석

  • 지혜 전통의 읽기: 의인과 악인의 결국이 다르다는 지혜문학의 틀 안에서 읽는다. 이 읽기에 따르면 악인의 성공은 겉모습일 뿐이고 하나님이 결국 바로잡으신다는 믿음이 "잠잠함"의 근거가 된다.
  • 기다림에 초점을 둔 읽기: "참아 기다리라"로 옮긴 히브리어에는 간절히 기다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이들은 이 구절을 체념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능동적인 기다림으로 풀이한다.
  • 신약과 종말론의 읽기: 11절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는 산상수훈의 마태복음 5:5와 맞닿아 있다고 널리 지적된다. 이를 근거로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구절을 최종 판단을 최후의 심판에 맡기는 소망으로 읽기도 한다.
  • 영성 전통의 읽기: "잠잠하라"는 표현은 침묵 속의 기도와 묵상을 권하는 말로도 인용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교단 사이에 뚜렷한 해석 차이가 있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된다.

  • 불의를 묵인하라는 뜻인가: 이 시는 분노가 악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할 뿐이며(8절), 정의에 대한 관심을 버리라는 말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원수 갚는 일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로마서 12장 17-21절과 함께 읽는 경우가 많다.
  • 악인의 형통 문제: 현실에서는 악인이 끝까지 잘되는 듯한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이 물음을 더 깊이 다루는 시편 73편이나 욥기와 함께 읽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 문맥을 떠난 인용: "잠잠하라"를 마음의 평안을 말하는 일반적인 권면으로만 쓰면, 악인의 번영에 대한 반응이라는 본래 맥락이 흐려진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 교회에서

고난이나 억울한 일을 겪는 교인을 위로하는 설교와 심방에서 흔히 쓰인다. 인내와 맡김을 말할 때 5절과 함께 인용되는 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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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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