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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틴 본문

성경 · 개념·용어

비잔틴 본문은 현존하는 그리스어 신약성경 사본의 대다수가 속한 본문 유형이다. 중세 비잔틴 제국 교회에서 널리 필사되었고, 공인 본문과 킹제임스 성경의 바탕이 되었다.

개요

비잔틴 본문은 성경의 특정 장절에 나오는 낱말이 아니다. 신약성경의 그리스어 사본을 분류할 때 쓰는 용어다. 신약 사본은 서로 닮은 읽기, 곧 같은 구절을 적은 표현을 공유하는 무리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무리를 '본문 유형'이라 한다. 비잔틴 본문은 그 가운데 하나다. 현존하는 그리스어 신약 사본의 대다수가 이 유형에 속하므로 '다수 본문'이라고도 부른다. 학자에 따라 '시리아 본문', '코이네 본문'이라는 이름도 쓴다.

배경

'비잔틴'이라는 이름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비잔틴 제국의 그리스어권 교회에서 이 본문이 중세 내내 표준처럼 필사된 데서 왔다. 처음 어디서 다듬어졌는지는 학자마다 의견이 다르다. 다만 4세기 무렵 형태를 갖추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복음서 부분에서는 5세기의 알렉산드리아 사본이 이른 증거로 꼽히며, 이 유형에 속하는 사본은 대부분 9세기 이후의 것이다.

특징과 공인 본문과의 관계

비잔틴 본문은 문장이 매끄럽고 비교적 길다는 점, 내용이 겹치는 복음서 구절끼리 표현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는 점이 특징으로 흔히 꼽힌다. 마태복음 6:13 끝의 송영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마가복음 16:9-20, 요한복음 7:53-8:11은 이 계열 사본 대부분에 들어 있다.

에라스뮈스가 1516년에 펴낸 그리스어 신약은 당시 구할 수 있던 몇몇 후대 비잔틴 사본을 바탕으로 했다. 이를 이은 판들이 '공인 본문'으로 불리며, 마르틴 루터의 독일어 번역과 킹제임스 성경의 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공인 본문이 비잔틴 사본 다수와 늘 같은 것은 아니다. 요한일서 5:7-8의 삼위 증언 구절과 사도행전 8:37은 공인 본문에는 있지만 대다수 비잔틴 사본에는 없다.

해석과 논점

웨스트코트와 호트는 1881년에 비잔틴 본문을 여러 읽기를 섞어 만든 후대 본문으로 보았다. 대신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 같은 이른 시기의 '알렉산드리아 본문'을 더 높이 평가했다. 오늘날 널리 쓰이는 네슬레-알란트판과 연합성서공회판 그리스어 신약은 여러 사본을 비교해 구절마다 읽기를 고르는 방식을 쓰는데, 대체로 이른 사본의 읽기를 택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맞서 '비잔틴 우선' 또는 '다수 본문' 입장의 학자들은 교회가 오랜 세월 널리 필사해 온 본문이 원문을 더 잘 보존했다고 주장한다. 호지스와 파스태드, 로빈슨과 피어폰트 등이 이 입장에서 비잔틴 계열 판을 펴냈다. 반대쪽은 이른 시기의 사본이나 교부들의 인용에서 비잔틴 본문 특유의 읽기가 드물다는 점을 들어 반론한다. 이 논쟁은 교단 사이보다는 학자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어느 본문을 따르더라도 핵심 교리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한편 정교회는 지금도 이 계열 본문을 교회의 본문으로 쓴다.

한국 교회에서

개역개정 등 한국어 성경에는 일부 구절이 괄호로 묶이거나 '(없음)'으로 표시되고, 사본 사이의 차이가 난하주(본문 아래에 단 짧은 설명)로 적힌 곳이 있다. 이런 구절은 주로 후대 사본에는 있지만 이른 사본에는 없는 것이다. 한국에도 공인 본문과 킹제임스 성경만이 바른 성경이라는 주장이 있어 성경 번역 논쟁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이 주장은 사본의 수와 전승을 근거로 삼는 비잔틴 본문 우선 입장과는 구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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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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