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홍준
인물
백홍준(白鴻俊, 1848~1893)은 평안북도 의주 출신의 초기 개신교인이다.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한국인 첫 세례교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권서와 전도인으로 의주 일대에 복음을 전했다.
생애
백홍준은 1848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중국을 오가며 장사하던 상인으로, 만주 영구(營口) 우장(牛莊)에서 스코틀랜드 장로교 선교사 존 로스를 만났다. 1874년 로스는 국경 교역지인 고려문에서 그의 아버지에게 한문 신약성경과 기독교 소책자를 건넸다. 백홍준과 의주의 친구들은 이 책을 2년 넘게 읽은 뒤 선교사를 찾아갔다.
그 무렵 로스는 안식년이어서 자리에 없었다. 대신 로스의 동역자이자 매제인 존 매킨타이어 목사가 이들을 맞았다. 매킨타이어는 세례를 주기 전에 공개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용기를 갖추고 부모의 허락을 받아 오게 했다. 백홍준은 1879년 매킨타이어에게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고향 의주로 돌아와 전도하다가 1892년 평안도 관찰사 민병석이 내린 체포령으로 붙잡혔고, 1893년 옥중에서 숨졌다. 사위는 장로교 목사 김관근이고, 외손자는 숭실대학교 교수를 지낸 김양선이다.
사역과 업적
- 성경 번역 참여: 로스와 매킨타이어가 의주 출신 청년들과 함께 진행한 한글 성경 번역을 몇 달 동안 도왔다. 이 번역은 1882년 누가복음·요한복음 간행을 거쳐 1887년 신약 전체를 담은 『예수셩교젼셔』로 완성되었다.
- 권서와 전도: 권서(勸書)는 성경과 전도 책자를 팔거나 나누어 주며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다. 백홍준은 만주에서 펴낸 복음서와 소책자를 의주와 그 일대에 은밀히 퍼뜨렸다.
- 장로 선출: 1887년 호러스 언더우드가 서울 정동 자기 집에서 연 새문안교회 창립 예배에서 서상륜과 함께 장로로 뽑혔다고 전한다.
- 의주 파송 전도인: 1888년 언더우드는 의주에 백홍준, 평양에 서상륜, 송천에 최명오를 전도인 겸 매서인으로 보냈다. 1889년에는 언더우드와 함께 만주로 건너가 신자 33명이 세례를 받도록 주선했다. 그 뒤 새뮤얼 마펫, 제임스 게일 같은 선교사의 국내 순회 전도를 안내했고, 의주읍교회 등을 세우는 데 힘썼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선교사가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기 전에 한국인이 먼저 성경을 읽었고, 국경 밖에서 세례를 받은 뒤 스스로 고향에 복음을 전했다. 백홍준은 그런 초기 수용을 보여 주는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그는 한글 성경 번역과 권서 활동, 서북 지역 전도와 선교사 안내를 통해 한국 개신교 초기의 토대를 놓은 사람으로 평가된다.
평가
- 흔히 "한국인 최초의 개신교 세례교인", "최초의 장로",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로 불린다.
- 세례 연도는 자료마다 다르다. 오래된 자료와 일부 교계 인명사전은 1876년에 이응찬·이성하·김진기와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적는다. 반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1879년 1월 말에 다른 한 사람이 먼저 세례를 받았고 이어 백홍준이 받았다고 보아, 그를 두 번째 세례인으로 소개한다. 그래서 "최초의 세례교인"은 첫 세례교인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 순교자라는 호칭은 그가 사악한 책을 펴내고 허가 없는 집회를 주선했다는 혐의로 갇혀 옥중에서 숨졌다는 데서 나왔다. 다만 옥중에서 병으로 숨졌다고 전하는 자료도 있다. 수감 장소와 기간도 자료마다 다르게 전한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6곳
- 백홍준(白鴻俊)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백홍준 - 위키백과
- [존 로스 루트를 가다] 한국인 최초로 4명이 세례 받은 복음의 관문 - 국민일보
- 한국인 최초세례자 백홍준 (1848-1893) - 교회연합신문
- 백홍준 - 기독교포털뉴스 인명사전
- 매킨타이어 목사의 한국 선교 - 크리스천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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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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