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선
인물
김양선(金良善, 1907~1970)은 한국의 장로교 목사이자 교회사가·고고학자이다. 숭실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을 세운 사람이다.
생애
1907년 평안북도 의주군 비현면에서 김관근 목사와 백관성 권사 사이에 태어났다. 4남 1녀 가운데 셋째 아들이다.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다니면서 한국 교회사와 고고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뒤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해방 뒤 서울로 내려와 성도교회를 세웠고 옥인교회에서도 목회했다. 나중에 숭실대학교 교수가 되어 가르쳤으며, 1970년 10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한국기독교박물관 설립
1948년 4월 서울 남산의 옛 조선신궁 터에 기독교박물관을 열었고, 매산고고미술관도 함께 세웠다. 당시 박물관 건립 운동은 천주교와 개신교가 함께 추진했다. 이 때문에 여러 교파가 하나로 어울리는 일치 운동의 성격도 띠었다. 김양선은 건축추진위원장을 맡아 이 운동을 이끌었다. 전쟁을 겪으면서 박물관은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기를 거듭했다. 북한 지역에서 가져온 자료를 지키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 한필려와 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숭실대학교는 지금도 한필려가 순직한 날을 박물관 기념일로 지킨다.
1967년 7월 21일 김양선은 모은 자료 약 3,600점을 숭실대학교에 기증했다. 같은 해 10월 10일 숭실대 개교 70주년에 맞춰 교내에서 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박물관은 한국 기독교 역사 전반에 걸친 자료를 모아 두고 있다. 경교(당나라 때 중국에 들어온 동방 기독교), 실학, 천주교, 개신교, 개화기 관련 자료가 여기에 포함된다.
저술
- 『한국기독교 해방10년사』
- 『한국기독교전래사』
- 『간추린 한국교회사』
- 『세계선교사』
- 『고고학 개론』
이 밖에 「한국실학발전사」 같은 논문도 남겼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김양선은 한국 기독교사 연구를 개척한 사람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연구 범위는 기독교사에 그치지 않고 실학, 천주교사, 고고학, 근대 독립운동사까지 넓었다. 그가 모은 유물과 문헌은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의 바탕이 되었다. 이 자료들은 지금도 한국 개신교 역사를 연구하는 데 기초 자료로 쓰인다. 숭실대학교 규정은 박물관 이름을 영구히 바꾸지 않고 김양선을 영원한 설립자로 둔다고 정해 두었다.
평가
한국 기독교사를 바라보는 그의 관점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대체로 네 가지로 정리된다.
- 주체적 수용사관: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한국인이 스스로 받아들인 역사로 본다.
- 민족교회론: 한국 교회를 민족과 떼어 놓을 수 없는 교회로 본다.
- 보편사적 인식: 한국 기독교사를 세계 문화사의 흐름 속에서 서술하려 했다.
- 구술사적 서술: 자신과 다른 사람의 경험과 증언을 바탕으로 역사를 썼다.
근래에도 그의 학문적 업적과 역사 인식을 다시 살펴보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6곳
- 김양선 - 위키백과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규정
- 한국기독교박물관 - 위키백과
- 숭실대학교 한국기독교박물관 - 디지털동작문화대전
- 이땅의 기독교역사를 한눈에 - 교회와신앙
- 매산 김양선의 학문적 업적과 한국기독교사 인식에 관한 재고찰 (김명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