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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6장 4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누가복음 6: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평지설교 끝에서 자신을 "주"라 부르면서도 말씀을 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던진 물음이다. 신앙고백과 순종, 믿음과 행함의 관계를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누가복음 6장 20~49절은 예수가 열두 제자를 세운 뒤 산에서 내려와 "평지"에 서서(누가복음 6:17) 제자들과 많은 무리에게 한 가르침이다. 흔히 '평지설교'라 부르며,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내용이 겹치지만 길이는 더 짧다.

46절은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앞뒤 두 비유를 잇는다. 앞에는 나무와 열매의 비유(6:43~45)가 있고, 뒤에는 두 집의 비유(6:47~49)가 이어진다. 예수는 자신을 "주여 주여" 부르면서도 그 말을 행하지 않는 이들에게 되묻는다. 이어서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땅을 깊이 파 반석 위에 기초를 놓은 집과 같다고 하고,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기초 없이 흙 위에 지은 집과 같다고 말한다.

평행 본문인 마태복음 7:21~27은 "그 날에" 있을 심판 장면과 함께 이 말을 적어 종말의 심판에 무게를 둔다. 누가복음은 지금 듣는 사람에게 던지는 짧은 반문의 형태를 띤다.

해석

  • 공통된 읽기: 여러 교단은 "주"라는 호칭을 단순한 존칭이 아니라 권위를 인정하는 고백으로 본다. 그렇게 고백한 사람이 그 말에 따르지 않는 모순을 지적한 말로 읽는다.
  • 개혁주의의 읽기: 개혁주의 전통은 순종을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참된 믿음에서 나오는 열매로 본다. 앞 절의 나무와 열매 비유와 연결하여, 행함은 칭의(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함)의 근거가 아니라 그 믿음이 참되다는 증거라고 설명한다.
  • 웨슬리 전통의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에 선 교단은 이 구절을 성화(신자가 거룩하게 변화되어 감)로 부르는 말씀으로 강조한다. 믿음이 삶의 실제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을 부각한다.
  • 제자도 중심의 읽기: 재세례파와 그 영향을 받은 전통은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라 사는 것을 신앙의 중심에 둔다. 이 구절은 그 근거 가운데 하나로 쓰인다.

논쟁과 쟁점

구절 자체의 번역이나 사본에는 큰 쟁점이 없다. 논의는 주로 믿음과 행함의 관계에서 나온다.

1980년대 후반 미국 복음주의권에서는 이른바 '주재권 구원(Lordship salvation) 논쟁'이 벌어졌다. 존 맥아더 등은 예수를 구주로 믿는 것과 주로 따르는 것을 나눌 수 없다고 주장하며 이 구절과 마태복음 7:21 같은 본문을 근거로 들었다. 반대쪽은 순종을 구원의 조건처럼 내세우면 은혜로 받는 구원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가르침(로마서 3:28)이 흐려진다고 반박했다.

이 구절을 문맥에서 떼어 신자의 구원의 확신을 흔드는 데 쓰는 것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말로 하는 고백과 실제 삶이 따로 노는 신앙을 경계하는 설교 본문으로 자주 쓰인다. 마태복음 7:21과 함께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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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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