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티아누스
인물
노바티아누스는 3세기 로마 교회의 장로이자 신학자이다. 박해 때 신앙을 버린 배교자를 다시 받아들이는 문제에서 엄격한 입장을 취하다 로마 주교 코르넬리우스와 갈라섰고, 별도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었다.
생애
노바티아누스는 3세기 전반 로마 교회에서 장로로 활동하였다. 출생지와 집안은 확실하지 않다. 로마 주교 코르넬리우스가 남긴 편지는 에우세비우스의 『교회사』에 실려 전한다. 이 편지에 따르면 노바티아누스는 중병을 앓을 때 병상에서 세례를 받았다. 코르넬리우스는 이 일을 들어 그가 성직자로서 자격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였다.
250년 데키우스 황제가 박해를 일으켰고, 같은 해 로마 주교 파비아누스가 순교하였다. 이후 로마 주교 자리는 한동안 비어 있었다. 이 기간에 노바티아누스는 로마 교회의 장로단을 대표해 카르타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에게 편지를 쓰는 등 교회 운영의 중심 역할을 맡았다.
251년 코르넬리우스가 로마 주교로 선출되자 노바티아누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를 따로 주교로 세웠다. 그는 이탈리아의 주교 세 명에게서 주교 서품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같은 해 코르넬리우스가 소집한 로마 교회회의는 노바티아누스와 그 지지자들을 교회 교제에서 끊어 냈다. 그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순교했다고 전해지지만 확실하지 않다.
사역과 업적
배교자 문제. 박해 때 제사를 드리거나 증명서를 사서 신앙을 부인한 사람들을 배교자라 한다. 이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려 할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가 당시 교회의 큰 쟁점이었다. 코르넬리우스와 키프리아누스는 일정 기간 참회를 거친 뒤 다시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다. 노바티아누스는 배교한 자의 죄는 교회가 사할 수 없고 하나님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고 보았다. 그를 따르는 공동체는 스스로 '깨끗한 자들'(카타로이)이라 불렀다. 이 공동체는 동방과 서방 여러 곳에 퍼져 몇 세기 동안 이어졌다. 니케아 공의회(325년)는 노바티아누스파 성직자가 본 교회로 돌아올 때의 절차를 따로 규정하였다.
신학 저술. 그가 라틴어로 쓴 『삼위일체론』은 로마에서 나온 초기의 중요한 신학 저작으로 꼽힌다. 이 책은 성부와 성자를 구별하지 않는 양태론에 맞서, 성자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자 참 사람임을 논증하였다. 그래서 이후 삼위일체 교리와 기독론이 발전하는 흐름 속에서 자주 다루어진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노바티아누스가 한국 교회에 직접 끼친 영향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남긴 물음, 곧 박해 속에서 신앙을 버린 사람을 교회가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는 권징과 교회의 거룩함을 다루는 신학교 교회사 수업에서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된다. 해방 뒤 한국 교회에서도 신사참배에 참여한 교역자의 회개와 복귀 문제를 놓고 비슷한 성격의 논쟁이 벌어졌다.
평가
코르넬리우스와 키프리아누스를 비롯한 당시 다수 교회는 노바티아누스가 교회의 일치를 깨뜨렸고, 회개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용서의 길을 막았다고 비판하였다. 이 때문에 후대 교회는 그를 교회 분열의 주동자로 기억해 왔다. 한편 그의 엄격함은 박해 시대에 교회의 순결을 지키려는 동기에서 나온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의 『삼위일체론』은 정통 신앙의 흐름과 크게 어긋나지 않는 저작으로 오늘날에도 연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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