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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비우스 선교정책

역사 · 같은 말: 네비우스 정책

네비우스 선교정책은 중국 선교사 존 네비우스가 내놓은 선교 방법을 바탕으로 1890년대 초 한국 장로교 선교부가 받아들인 정책이다. 현지 교회가 스스로 전도하고(자전), 스스로 다스리며(자치), 재정을 스스로 꾸리는(자립) 삼자(三自) 원칙과 체계적인 성경공부를 핵심으로 한다.

배경

한국 개신교 선교 초기에 들어온 장로교 선교사들은 대부분 20대의 젊은이로, 선교 경험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교 방식을 두고 선교부 안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호러스 언더우드는 적극적인 방식을 추진했고, 호러스 알렌과 존 헤론은 더 신중하고 전통적인 방식을 지지했다고 전해진다.

언더우드는 만주에서 활동하던 존 로스를 통해 네비우스의 방법을 알게 되었고, 그의 책을 연구했다고 알려져 있다. 존 리빙스턴 네비우스(John Livingston Nevius, 1829~1893)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1854년부터 중국 산둥 지역에서 약 40년 동안 일했다. 그는 1880년대 중반 중국의 선교 잡지 「차이니즈 레코더」(The Chinese Recorder)에 자신의 선교 방법을 발표했다. 그때까지는 외국 선교부가 예배당을 지어 주고 현지인 사역자의 급여를 대는 방식이 흔했다. 네비우스는 이와 달리 처음부터 현지 교인의 힘으로 서는 토착 교회를 세우자고 주장했다. 이 생각은 영국의 헨리 벤과 미국의 루퍼스 앤더슨이 앞서 제창한 '삼자 원리'에 기초한다.

전개

  • 1890년: 언더우드를 비롯한 주한 장로교 선교사들이 네비우스 부부를 서울로 초청했다. 네비우스는 약 2주 동안 머물며 선교 경험과 방법론을 소개했다. 방문 시기는 대체로 6월로 알려져 있으나, 5월로 적은 자료도 있다.
  • 1891년: 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부가 언더우드의 주도로 이 방법을 선교부 규칙에 반영해 공식 정책으로 삼았다.
  • 1893년 1월: 미국 북장로교와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장로회 선교공의회를 조직했다. 첫 모임에서 채택한 선교 원칙에는 자립하는 교회 등 네비우스 정책의 내용이 들어 있다.
  • 이후 이 정책은 다른 장로교 선교부로 퍼져 한국 장로교의 대표적인 선교 원칙이 되었다. 호남 지역에서 일한 남장로교 선교사들도 이 원칙을 따른 것으로 평가된다.

주요 내용

선교사 찰스 앨런 클라크(한국 이름 곽안련)가 박사학위 논문에서 요약한 내용이 널리 인용된다.

  • 순회 전도: 선교사가 직접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전도한다.
  • 성경 중심: 모든 사역의 중심에 성경을 둔다.
  • 자전(自傳): 모든 신자가 배우는 동시에 남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 복음을 스스로 퍼뜨린다.
  • 자치(自治): 각 모임은 보수를 받지 않는 지도자인 영수(領袖)가 이끈다. 여러 모임을 돌보는 순회 구역은 급여를 받는 조사(助師, 선교사를 돕는 현지인 사역자)가 맡는다.
  • 자립(自立): 교인들이 스스로 마련한 예배당을 쓰고, 목회자 사례비를 외국 자금으로 주지 않는다.
  • 체계적 성경공부: 모든 신자가 영수와 조사의 지도로 성경공부를 하고, 지도자들은 따로 모여 훈련을 받는다. 이 공부는 개교회·지역·전국 단위로 이루어졌다.

결과와 영향

네비우스의 방법은 정작 중국에서는 자리 잡지 못했다. 반면 한국에서는 받아들여져 장로교회의 기본 틀이 되었다. 한국인 지도자들이 일찍부터 교회 운영을 맡았고, 교인들이 직접 예배당을 짓고 사역자를 후원하는 자립 전통이 생겼다. 성경공부 모임을 중시한 전통도 이 정책과 연결된다. 1900년대 초 평양 등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교회가 빠르게 성장한 것도 이 정책과 함께 설명되는 일이 많다(→ 한국 교회 성장). 1907년 9월 조직된 한국 장로교의 첫 노회인 독노회에서는 한국인들이 부회장·서기 등 임원을 맡았다. 한편 감리교 선교부는 선교 전략에서 장로교와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평가

언더우드는 『한국의 부름』(The Call of Korea, 1908)에서 이 정책의 핵심을 자치·자립·자전으로 정리했다. 클라크는 이 정책의 진짜 강조점이 성경공부에 있다고 보았다.

이 정책에 대한 연구는 시기에 따라 관점이 달라졌다. 초기 연구는 교회의 형성과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토착화 논쟁 이후에는 민족사의 관점에서 한국 교회사를 보는 흐름이 생기면서 비판적인 평가가 늘었다. 다만 두 흐름 모두 이 정책이 한국 교회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전제로 삼는다는 지적이 있다. 개혁주의 진영 일부에서도 이 정책의 신학적 성격을 비판적으로 다루는 논의가 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13곳
  1. 존 리빙스톤 네비우스 - 위키백과
  2. 존 네비우스 선교방법 연구 (KCI 논문 초록)
  3. 네비우스 선교정책 - 크리스천투데이 신학용어사전(kcm.kr)
  4. 네비우스 선교정책 - 나무위키
  5. [민족교회] 조직교회의 기초가 된 자치, 자전, 자립 - 평양대부흥
  6. 네비우스 선교정책의 세속성 - 리폼드뉴스 신학저널
  7. 구 조선, 구한말 미국 선교사 열전 7 - 크리스찬타임스
  8. 네비우스 선교 정책 - 개혁주의 마을
  9. Missionary Mr. Underwood - Korea Stamp Society
  10. A history of Presbyterian mission in Korea - The Presbyterian Outlook
  11. Presbyterianism in the Hermit Kingdom - PC(USA) Historical Society
  12. Conquering Korea for Jesus - ScienceDirect
  13. Traditions, Missionary - University of Edinburgh ERA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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