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스 알렌
인물 · 같은 말: 알렌, 안련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은 미국 북장로교가 보낸 의료 선교사이자 외교관이다. 한국에 머물며 활동한 첫 개신교 선교사로 꼽히며, 한국 최초의 서양식 병원인 광혜원(제중원)을 세우자고 건의했다.
생애
1858년 미국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에서 태어났다.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와 마이애미 의과대학에서 공부했다. 1883년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의료 선교사로 중국에 갔다. 그러나 중국에서 자리를 잡지 못했고, 1884년 6월 선교부에 조선으로 가겠다고 요청했다. 승인을 받아 같은 해 9월 조선에 들어왔다. 당시 조선은 기독교 선교를 자유롭게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선교사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미국 공사관 소속 의사로 활동했다.
1887년에는 주미 전권공사 박정양 일행의 참찬관(외교 고문)이 되어 미국에 다녀왔다. 1890년 주한 미국 공사관 서기관이 되면서 미국 외교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총영사와 공사를 지냈고, 1905년 공사직에서 물러났다. 1932년 오하이오주 톨리도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민영익 치료: 1884년 12월 갑신정변 때 크게 다친 민영익을 서양 의술로 치료했다. 이 일로 고종과 왕실의 신임을 얻었다.
- 광혜원·제중원 설립: 고종이 알렌의 건의를 받아들여 1885년 4월 서울 재동 홍영식의 옛집에 한국 최초의 서양식 국립병원인 광혜원을 열었다. 이름은 곧 제중원으로 바뀌었다. 조선 정부가 건물과 재정을 대고, 북장로교 선교부가 의사 파견과 진료를 맡았다. 제중원의 맥은 오늘날 세브란스병원으로 이어진다.
- 의학 교육: 1886년 3월 시험으로 뽑은 학생 16명으로 제중원의학당을 열었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양 의학을 가르친 교육기관이다.
- 외교 활동: 1895년 명성황후 시해 사건 때 다른 서양 외교관들과 함께 일본 공사 미우라 고로에게 해명을 요구했다. 1903년에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일본의 군사적 야심을 부추기면 오히려 미국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저술: 한국 문화를 서양에 소개하는 초기 저서들을 썼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알렌은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 한국에 들어와 머물며 활동한 첫 개신교 선교사로 꼽힌다. 그는 왕실의 신임을 얻었고, 그가 세운 제중원은 선교의 거점이 되었다. 공개적인 선교가 어렵던 때에 뒤이어 온 호러스 언더우드와 헨리 아펜젤러 같은 선교사들이 활동할 발판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그는 한국 의료 선교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한국 교회는 대체로 알렌이 들어온 1884년을 개신교 선교 역사의 기점으로 삼고 햇수를 세어 왔다. 반면 목사 안수를 받은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들어온 1885년을 기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평가
근대 의학을 들여오고 서양 의학 교육을 시작한 선구자라는 평가가 널리 받아들여진다. 한편 그가 의료 선교사로 일한 기간은 3년 남짓에 그쳤고, 한국에 머문 기간 대부분은 외교관으로 보냈다는 점도 지적된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은 그를 조선에서 미국의 국익을 최대한 키우려고 반청·반일 외교를 펼친 외교관으로도 소개한다. 미국의 이권 획득에 관여해 열강이 한국의 이권을 빼앗는 데 길잡이 노릇을 했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반대로 대한민국 국가보훈부는 그를 한국의 주권을 지지하는 외교 활동을 한 인물로 소개한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8곳
- 호러스 뉴턴 알렌 - 위키백과
- 알렌 1858~1932 - 우리역사넷(국사편찬위원회)
- 제중원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세브란스이야기 역사 한마당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총동문회
- 조선인보다 조선을 더 많이 사랑한 '의료선교사' - 아이굿뉴스
- Horace Newton Allen - Wikipedia
- Horace Newton ALLEN - 국가보훈부
- Allen (Horace N. Allen, 安連, 1858–1932) - P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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