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헤론
인물 · 같은 말: 헤론, 혜론
존 헤론(John W. Heron, 1856~1890)은 미국 북장로교가 조선에 보내기로 처음 정식 임명한 의료 선교사이다. 제중원 제2대 원장을 지냈고,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처음 묻힌 사람이다.
생애
헤론은 잉글랜드 더비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E. S. 헤론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회중교회 목사였다. 1870년 열네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테네시주 녹스빌에 자리 잡았다. 1881년 테네시 대학교 의과대학에 들어가 1883년 최우등으로 졸업했다. 이후 뉴욕 대학교 병원에서 수련했다. 모교가 교수 자리를 제안했지만 이를 사양하고 조선 선교를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는 1884년 봄 조선 선교를 시작하기로 하고 헤론을 선교사로 임명했다. 이 때문에 그는 북장로교가 조선에 보내기로 처음 정식 임명한 의료 선교사로 꼽힌다. 그러나 조선의 정세가 불안해 곧바로 들어가지 못했다. 헤론은 1885년 4월 해리엇 깁슨과 결혼한 뒤 일본에 머물며 한국어와 풍습을 익혔다. 그해 6월 20일 인천에 내렸고 이튿날 서울에 들어왔다.
사역과 업적
- 의료 사역: 1885년 4월 문을 연 왕립 병원 제중원에서 호러스 알렌과 함께 환자를 돌봤다. 1887년 알렌이 외교관이 되어 떠나자 제중원 제2대 원장이 되었다. 알렌이 맡던 고종의 시의 자리도 이어받았고, 고종에게서 가선대부라는 벼슬을 받았다. 서울 밖 시골에 나가 환자를 진료하기도 했다.
- 교회와 문서 사역: 제중원에서 열린 예배 모임을 시작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 모임은 뒤에 남대문교회가 되었다. 1887년에는 성경 번역 위원으로 일했다. 1889년에는 장로교 선교사들의 공의회 회장으로 뽑혔다. 1890년에는 호러스 언더우드, 감리교 선교사 올링거와 함께 조선성교서회를 세웠다. 이 기관은 기독교 서적과 정기간행물을 펴냈으며, 오늘날 대한기독교서회의 전신이다.
죽음과 양화진 매장
1890년 여름 서울에 이질이 크게 돌았다. 헤론은 환자를 돌보다 과로로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자신도 감염되어 그해 7월 세상을 떠났다. 이때 나이는 서른 남짓이었고, 조선에 온 지 약 5년 만이었다. 그는 양화진에 묻힌 첫 서양인으로 기록되어 있어, 양화진이 선교사 묘지로 쓰이게 된 출발점으로 이야기된다. 임종 때 곁에 있던 조선 사람들에게 예수가 그들을 사랑해 목숨을 내주었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아내 해리엇은 1892년 선교사 제임스 게일과 재혼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헤론은 언더우드와 함께 북장로교의 조선 선교를 처음부터 세운 사람이다. 제중원은 뒤에 세브란스병원과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어졌다. 그가 세운 조선성교서회는 한국 교회 문서 선교의 바탕이 되었다. 무엇보다 전염병 환자를 돌보다 숨졌다는 사실 때문에 한국 교회에서 의료 선교의 희생을 보여 주는 이야기로 자주 소개된다.
평가
의학사 연구에서는 헤론을 유능한 의사이자 헌신적인 선교사로 평가한다. 다만 사역 기간이 5년 남짓으로 짧아 알렌이나 언더우드보다 덜 알려졌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출생일(1856년 또는 1858년)과 사망일(7월 26일 또는 27일)은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7곳
- John W. Heron - Wikipedia
- The life of Dr. John William Heron, the second superintendent of Chejungwon - PubMed
- 의사학(Korean J Med Hist) 9권 2호, 헤론의 생애
- '의료 선교' 존 헤론, 최초로 양화진에 묻히다 - 미디어스
- Dr John William Heron - Find a Grave
- Horace N. Allen and the Early US-Korea Encounter, 1884-
- James Scarth Gale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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