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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3장 17-19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창세기 3:17-19

17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18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19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 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타락 뒤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내린 선고로, 땅이 저주를 받고 사람이 땀 흘려 수고해야 먹으며 결국 흙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죄와 죽음, 노동의 의미를 다룰 때와 장례 예식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라고 한 나무의 열매를 먹은 뒤, 하나님은 뱀(14-15절), 여자(16절), 남자(17-19절)에게 차례로 선고를 내린다. 이 구절은 그 가운데 마지막인 남자에 대한 선고다. 저주의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땅"으로 표현된다. 이어 사람이 동산에서 쫓겨나는 장면(22-24절)이 나온다.

히브리어 본문에서 '사람'(아담)과 '흙/땅'(아다마)은 소리가 비슷한 말이다. 그래서 흙에서 지음받은 사람이 흙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하나의 말놀이를 이룬다(창세기 2장 7절 참조). 17절의 "수고"로 옮긴 히브리어는 16절에서 여자의 "고통"을 가리킨 말과 같은 단어로 알려져 있다. 개역한글의 "식물"은 '먹을 것'(食物)이라는 뜻이며, 개역개정은 이를 "먹을 것"으로 고쳤다.

해석

  • 전통적 개신교의 읽기: 장로교·감리교 등 여러 교단은 이 구절을 타락의 결과, 곧 죄로 말미암아 수고와 죽음이 인간의 삶에 들어왔다는 선언으로 읽는다. 바울이 아담 한 사람으로 죄와 사망이 들어왔다고 말한 대목(로마서 5장 18-19절)과 연결해 원죄 교리의 근거 구절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
  • 노동관에 관한 읽기: 일하는 것은 타락 이전에도 주어진 사명이었다(창세기 2장 15절).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노동 자체가 저주가 아니라고 본다. 저주받은 것은 땅이며, 노동이 고되고 열매가 불확실해졌다는 데 강조점을 둔다. 루터와 칼뱅에게서 비롯된 소명 사상도 이 구분을 바탕으로 한다.
  • 피조물 회복의 읽기: 땅이 사람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는 표현을 로마서 8장 19-23절의 "탄식하는 피조물"과 함께 읽는다. 구원이 사람만이 아니라 창조 세계의 회복에까지 미친다는 근거로 삼는 것이다.
  • 그리스도 중심의 읽기: 일부 설교 전통은 "가시덤불"을 예수가 쓴 가시관(마태복음 27:29)과 잇고,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대신 받았다는 갈라디아서 3장 10-14절과 연결해 읽는다.

논쟁과 쟁점

19절의 죽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창조와 진화 논의에서 쟁점이 된다. 젊은 지구 창조론 쪽은 타락 이전에는 인간을 포함한 생물의 죽음이 없었다고 읽는다. 유신진화론 등 다른 입장은 이 구절이 인간의 죽음, 또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고 보고 생물학적 죽음 일반과는 구분한다. 17절의 "아담"을 고유한 이름으로 볼지, '그 사람'이라는 일반 명사로 볼지도 번역과 해석에서 갈리는 지점이다.

한국 교회에서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은 장례예배, 특히 하관 예식에서 자주 낭독된다. 대한성공회나 기독교한국루터회처럼 교회력을 지키는 교회와, 이를 받아들인 일부 장로교·감리교회는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며 이 구절에서 나온 표현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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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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