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장 1-7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이사야 5:1-7
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
3 예루살렘 거민과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케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것으로 황무케 하리니 다시는 가지를 자름이나 북을 돋우지 못하여 질려와 형극이 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을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말라 하리라 하셨으니
7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이 정성껏 가꾼 포도원에서 들포도가 열렸다는 노래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이다. 공평과 정의를 촉구하는 본문이자 신약 포도원 비유의 배경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이사야 5장 1-7절은 흔히 "포도원의 노래"라 불린다. 이사야 1:1에 따르면 이사야는 웃시야·요담·아하스·히스기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해 예언했다.
노래는 예언자가 "나의 사랑하는 자"(가까운 벗)의 포도원을 노래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주인은 기름진 산의 땅을 파고 돌을 골라낸 뒤 좋은 포도나무를 심었다. 망대와 술틀까지 마련했지만 포도원에는 "들포도"가 맺혔다. 3절부터는 말하는 이가 주인 자신으로 바뀐다. 주인은 예루살렘과 유다 사람들에게 "판단하라"고 청한다. 그리고 7절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고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밝힌다.
듣는 사람이 먼저 판결을 내리게 하고, 그 판결이 자신에게 돌아오게 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나단이 다윗에게 들려준 이야기(사무엘하 12장)와 자주 비교된다. 이어지는 5:8-30은 땅 독점, 술 취함, 뇌물 등을 꾸짖는 "화 있을진저" 선언이다. 이 선언들이 7절의 고발을 구체적으로 풀어낸다.
해석
- 예언서적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단락을 기원전 8세기 유다 사회의 불의에 대한 심판 선언으로 읽는다. 7절은 히브리어 말놀이로 알려져 있다. '공평'(미슈파트)을 바랐더니 '포학'(미스파흐, 피 흘림)이 있었고, '의로움'(체다카)을 바랐더니 '부르짖음'(체아카)이 있었다는 대구다. 이 읽기는 하나님이 기대한 열매가 사회적 정의였다고 본다.
- 문학적 읽기: 사랑 노래로 시작해 법정 고발로 바뀌는 구조에 주목한다. 청중의 공감을 먼저 얻은 뒤 뒤집는 비유의 기법으로 본다.
- 신약과 이어 읽기: 그리스도인 해석자들은 예수의 악한 농부 비유(마가복음 12:1-12 등)를 이 본문과 함께 읽는다. 그 비유가 울타리·술틀·망대 같은 이 본문의 표현을 가져다 쓰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와 연결해 "열매 맺는 삶"의 배경으로 읽기도 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교단 사이에 뚜렷한 교리 논쟁이 있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 오늘의 교회에 적용할 수 있는가: 본문이 명시한 대상은 이스라엘과 유다다. 그래서 포도원을 교회나 신자에게 적용하는 것은 신약의 비유를 거친 해석임을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이스라엘이 버려지고 교회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는 식의 읽기에 대해서는 로마서 11장 등을 근거로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 황폐 선언이 최종적인가: 6절의 황폐 선언과 관련해서는, 이사야 27:2-6이 회복된 포도원을 다시 노래한다는 점이 함께 거론된다.
한국 교회에서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모두 "들포도"라는 표현을 쓴다. 한국 교회 설교에서 이 말은 겉모양만 갖춘 신앙이나 열매 없는 삶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쓰인다. 7절은 공의와 정의를 다루는 설교에서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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