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5장 1-8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15:1-8
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
2 무릇 내게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무릇 과실을 맺는 가지는 더 과실을 맺게 하려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6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8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자신을 "참 포도나무", 제자들을 가지에 비유해 자신 안에 머물러야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친 말씀이다. 신앙생활의 근본을 말하는 구절로 자주 인용되며, 6절의 버려지는 가지를 두고 구원의 보존 문제가 논의된다.
문맥
요한복음 13~17장의 고별 설교 가운데 한 대목이다. 고별 설교는 예수가 최후의 만찬 뒤 제자들에게 남긴 긴 가르침이다. 가룟 유다가 자리를 떠난 뒤(요한복음 13:30) 남은 제자들에게 한 말이며, "일어나라 여기를 떠나자"(요한복음 14:31)는 말 다음에 이어진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는 요한복음에 여러 번 나오는 "나는 …이다" 형식의 말씀 가운데 하나다. 구약에서 포도나무와 포도원은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비유로 쓰였다(이사야 5장 1-7절, 시편 80편). 예수는 이 비유를 가져와 자신을 "참" 포도나무로 소개한다. 단락에서 가장 많이 반복되는 말은 "거하다"(그리스어 '메노', 머물러 있다)이다.
해석
- 열매의 뜻: 많은 해석자는 열매를 순종과 사랑의 삶으로 읽는다. 이어지는 9~17절이 계명을 지키고 서로 사랑하라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읽기는 성화, 곧 믿는 이가 점점 거룩해지는 과정과 이어진다. 열매를 전도로 얻은 새 신자로 읽는 설명도 있다.
- 2절과 3절의 말놀이: 2절의 "깨끗케 하다"와 3절의 "깨끗하였으니"는 그리스어에서 같은 어근의 말이다. 그래서 가지치기와 말씀으로 인한 정결을 함께 가리킨다고 설명된다.
- 2절 "제해 버리시고": 원어 '아이로'는 "잘라 내다"와 "들어 올리다"를 모두 뜻할 수 있다. 대부분의 번역은 "제거하다"로 옮긴다. 일부 해석자는 땅에 늘어진 가지를 들어 올려 돌보는 장면으로 읽는다.
- 성찬과의 연결: 일부 해석자는 만찬 직후의 포도나무 비유에서 성찬의 잔을 떠올린다. 본문에 직접 언급은 없다.
논쟁과 쟁점
6절의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를 두고 전통마다 읽기가 다르다.
- 개혁주의(칼빈주의)의 읽기: 참으로 그리스도에게 연결된 사람은 끝까지 보존된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에 따라 읽는다. 버려지는 가지는 겉으로만 붙어 있던 사람이라고 보고, 가룟 유다를 예로 들거나 요한일서 2장 19절과 함께 읽는다.
-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전통은 실제로 믿음 안에 있던 사람도 머물기를 그치면 떨어져 나갈 수 있다는 경고로 읽는다.
- 그 밖의 읽기: 이 구절이 구원의 상실이 아니라 쓸모나 상급의 상실을 말한다는 해석도 있다.
7절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를 번영신학처럼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얻는다는 약속으로 인용하는 데 대해서는 비판이 있다. 비판하는 쪽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이라는 조건과 8절의 목적(아버지의 영광)을 빼놓은 인용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교회에서
개역개정은 개역한글의 "과실"을 "열매"로 고쳤다. "내 안에 거하라"는 표현은 설교 제목과 신앙생활 표어로 널리 쓰이며, 7절은 기도에 관한 설교에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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