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 4장 1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에스더 4: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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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드개가 왕 앞에 나서기를 망설이는 에스더에게 한 말로, 왕후의 자리가 "이 때를 위함"일 수 있다는 물음이다. 하나님의 이름 없이 섭리를 암시한다는 점과 소명을 말하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하만의 계략으로 페르시아 왕 아하수에로가 제국 안의 유다인을 모두 죽이라는 조서를 내리자, 모르드개는 왕후가 된 사촌 에스더에게 왕께 나아가 민족을 위해 간청하라고 전한다. 에스더는 부름 없이 왕에게 나아가는 사람은 죽임을 당할 수 있다며 망설인다(에스더 4:11). 이 구절은 이에 대한 모르드개의 답이다. 그는 에스더가 잠잠해도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겠지만 에스더와 그 집안은 멸망할 것이라고 경고한 뒤, 왕후의 자리가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묻는다. 에스더는 금식을 요청하고 "죽으면 죽으리이다"(에스더 4:16)라고 답하며 왕 앞에 나서기로 한다.
해석
- 섭리의 읽기: 에스더서 히브리어 본문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많은 주석가와 설교자는 "다른 데로 말미암아"라는 표현과 "누가 아느냐"라는 물음에, 드러나지 않게 일하는 하나님의 섭리가 암시되어 있다고 본다. 후대 유대교에서 '곳'(히브리어 '마콤')이 하나님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 점을 근거로 드는 해석도 있다.
- 소명의 읽기: 에스더가 왕후가 된 일을 개인의 행운이 아니라 공동체를 위해 쓰여야 할 자리로 읽는다. 이 읽기는 자신이 맡은 지위나 직업을 하나님이 주신 소명으로 보는 적용으로 이어진다.
- 인간적 경고로 보는 읽기: 일부 학자는 "다른 데"를 다른 사람이나 세력의 도움으로 보고, 이 구절을 신학적 진술보다는 위기 앞에서 결단을 촉구하는 정치적 설득으로 읽는다.
논쟁과 쟁점
본문 전승의 차이: 개신교는 마소라 본문을 따르는 히브리어 에스더서를 정경으로 받는다. 반면 칠십인역 그리스어 에스더서에는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기도 등 하나님을 직접 언급하는 부분이 덧붙어 있고, 천주교와 정교회는 이 부분도 성경으로 받는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이 없다는 점을 바탕으로 한 섭리 해석은 주로 히브리어 본문을 전제로 한다.
문맥을 떠난 인용: 이 구절이 승진이나 당선, 특정 자리에 오른 일을 정당화하는 말로 쓰인다는 지적이 있다. 이를 비판하는 쪽은 이 말이 확신이 아닌 "누가 아느냐"라는 물음이라는 점, 그리고 그 자리가 목숨을 걸고 공동체를 위해 나서라는 부름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한국 교회에서
헌신예배, 청년 수련회, 임직이나 파송과 관련된 설교에서 "이 때를 위함"이라는 표현이 주제 말씀으로 자주 쓰인다. 바로 뒤에 이어지는 에스더 4:16의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신사참배 거부로 투옥되었던 안이숙의 수기 제목 『죽으면 죽으리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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