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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3장 17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스바냐 3장 17절은 회복된 예루살렘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 그 백성 때문에 기뻐하며 노래하신다고 말하는 구절이다.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을 드러내는 위로의 말씀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스바냐서는 요시야 왕 때 활동한 선지자 스바냐의 말을 담은 책이다(스바냐 1:1). 책의 앞부분은 유다와 이웃 민족들, 예루살렘에 내릴 여호와의 날의 심판을 선포한다. 3장 9절부터는 정결하게 된 백성과 겸손한 남은 자가 회복될 것을 약속한다.

3장 14절에서 선지자는 "딸 시온"에게 노래하고 기뻐하라고 외친다. 16절은 "그 날에"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할 말을 소개하고, 17절은 그 말의 내용이다. 그래서 개역개정 본문이 "하리라"로 끝난다. 듣는 "너"는 개인이 아니라 시온, 곧 예루살렘과 그 백성이다. 14절에서 백성에게 기뻐하라고 한 부름이 17절에서는 하나님이 백성을 기뻐하신다는 말로 이어진다. 이렇게 기쁨의 주체가 백성에서 하나님으로 옮겨 가는 짜임이 이 구절의 특징이다.

"전능자"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로 '용사'(기보르)를 뜻한다. 원문은 하나님을 백성을 구원하는 용사로 그린다.

해석

  • 역사적 읽기: 심판 뒤에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약속한 말로 본다. 바벨론 포로와 포로 귀환이라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읽는다.
  • 기독론적 읽기: 많은 그리스도교 해석자는 "너의 가운데 계시니"라는 말에서 임마누엘의 약속을 보고, 이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읽는다.
  • 종말론적 읽기: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는 최종 회복, 곧 새 예루살렘 환상(요한계시록 21:3)과 이어서 읽는다. 세대주의 쪽에서는 민족 이스라엘이 장래에 회복될 것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언약신학 쪽에서는 이 약속이 교회를 포함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이루어진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 경건적 읽기: 하나님이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뻐하고 사랑하신다는 위로의 말씀으로 적용한다.

논쟁과 쟁점

번역과 본문 문제가 있다. "잠잠히 사랑하시며"는 마소라 본문을 따른 번역이다. 사랑이 깊어 말이 없다는 뜻으로 풀기도 하고, 백성의 허물을 더는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풀기도 한다. 한편 칠십인역은 이 부분을 "사랑으로 새롭게 하시리라"는 뜻으로 옮긴다. 일부 현대 번역도 이 읽기를 따른다.

문맥을 떠난 인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 구절은 원래 공동체인 시온에게 준 약속이다. 그래서 개인의 감정적 위로로만 읽으면 심판 뒤의 회복과 정결이라는 앞뒤 흐름이 가려진다는 것이다. 이 주제로 교단 사이에 뚜렷한 대립은 없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기쁨을 주제로 한 설교와 묵상에서 자주 인용된다. 위로와 축복의 구절로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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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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