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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6장 21-2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6:21-22

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죄의 종이던 과거의 열매(부끄러움과 사망)와 하나님의 종이 된 지금의 열매(거룩함과 영생)를 맞세운 구절이다. 성화와 영생의 관계를 논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로마서 6장 후반부의 일부다. 바울은 6장 1절에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고 묻는다. 이어 세례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은 죄에 대하여 죽었다고 설명한다. 15절부터는 종(노예)과 주인의 비유로 넘어가, 사람은 죄의 종이 되든지 의의 종이 되든지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21-22절은 이 비유를 마무리하며 "그 때"(믿기 전)와 "이제"(믿은 뒤)를 맞세운다. 예전 삶은 지금 부끄러운 것이고 그 끝은 사망이다. 지금의 삶은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고 그 끝은 영생이다. 바로 뒤의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 영생"이 이 대조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

해석

  • "열매"와 "마지막": "마지막"으로 옮긴 그리스어 '텔로스'는 끝, 결말, 도달점을 뜻한다. 이 때문에 많은 해석자는 이 구절이 두 삶의 방식을 그 결과로 견준다고 본다.
  • 개혁주의의 읽기: 장로교 등 개혁주의 전통은 "거룩함"(그리스어 '하기아스모스')을 성화로 읽는다. 성화는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점점 거룩해지는 과정이다. 이 전통은 성화가 칭의의 열매일 뿐 구원의 근거는 아니며, 영생은 23절의 말대로 "은사", 곧 선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 웨슬리 전통의 읽기: 감리교·성결교·나사렛 등 웨슬리 신학을 잇는 교단은 죄에게서 "해방"되었다는 표현에 무게를 둔다. 이들은 이 구절을 신자가 죄의 지배에서 실제로 벗어나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근거로 읽으며, 성결 교리와 연결해 설명하기도 한다.
  • 종의 비유: "하나님께 종이 되어"는 19절에서 바울이 "사람의 예대로"(사람 사이의 관례에 빗대어) 말한다고 스스로 밝힌 비유의 일부다. 여러 해석자는 이 표현을 억압이 아니라 섬기는 주인이 바뀌었다는 뜻으로 읽는다.

논쟁과 쟁점

  • 성화와 영생의 관계: 거룩한 삶이 영생에 이르는 조건인지, 영생을 받은 사람에게 따라오는 결과인지를 두고 읽기가 갈린다. 칼빈주의는 참된 신자는 끝까지 보존된다는 성도의 견인의 관점에서 이 구절을 읽는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전통은 신자가 은혜에 계속 응답해야 한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경향이 있다. 다만 양쪽 모두 영생이 행위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점은 받아들인다.
  • 21절의 끊어 읽기: 고대 그리스어 사본에는 문장부호가 거의 없어서, 물음이 어디서 끝나는지가 번역마다 다르다. 개역한글처럼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에서 끊으면 이어지는 문장이 그 열매를 설명하는 대답처럼 읽힌다. "지금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에서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로 이어 읽으면 '얻은 것이 없다'는 뜻의 수사 의문문이 된다. 어느 쪽으로 읽든 그 끝이 사망이라는 요지는 같다.

한국 교회에서

바로 뒤의 23절은 전도 소책자 등에서 복음을 설명할 때 널리 인용된다. 21-22절은 설교에서 23절과 함께 묶여 믿기 전과 믿은 뒤의 삶을 견주는 본문으로 쓰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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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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