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훈련 운동
역사
제자훈련 운동은 평신도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훈련해 교회 사역을 함께 맡게 하려는 흐름이다. 한국에서는 1978년부터 옥한흠과 사랑의교회가 선교단체가 하던 제자훈련을 지역 교회에 들여오면서 퍼졌다.
배경
한국 교회에서 제자훈련은 1970년대까지 주로 선교단체가 하는 일로 여겨졌다. 소수를 오래 집중해서 길러 사역자로 세우는 방식은 지역 교회보다 교회 밖 단체의 몫이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소속 목사인 옥한흠은 서울 성도교회에서 대학생 성경공부를 지도하면서 이 방식을 익혔다. 그 뒤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제자훈련을 개혁주의 교회론(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다루는 신학)의 틀에서 다시 해석했다. 그리고 평신도(목회자가 아닌 일반 교인)도 훈련을 받으면 교회 사역을 함께 맡는 동역자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전개
- 1978년: 옥한흠이 서울 강남에 은평교회를 개척했고, 1981년 이름을 사랑의교회로 바꾸었다. 개척 초기부터 "평신도를 예수의 훈련된 제자로 키운다"를 목회 목표로 삼았다.
- 1984년: 자신의 훈련 경험과 원리를 엮은 『평신도를 깨운다』를 펴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한국 교회에 제자훈련 바람이 불었다. 이후 100쇄를 넘겼고 11개 언어로 번역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986년: 국제제자훈련원을 세웠다. 같은 해 3월에는 목회자를 위한 '평신도를 깨운다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CAL세미나, Called to Awaken the Laity)를 시작했다.
- 1999년: 세미나를 마친 목회자들이 '제자훈련 목회자 네트워크'(CAL-NET)를 만들었다. 이 모임을 통해 제자훈련이 전국과 해외 교회로 퍼졌다.
- 2003년: 옥한흠이 담임목사에서 은퇴했고 2010년 별세했다. 국제제자훈련원 세미나는 그 뒤에도 사랑의교회 주최로 계속 열리고 있다.
결과와 영향
사랑의교회는 지역 교회에 제자훈련을 접목한 첫 사례로 꼽힌다. 옥한흠이 은퇴한 2003년 무렵에는 등록 교인 4만여 명의 대형교회가 되었다. 사랑의교회에는 제자반, 순장반 같은 단계별 훈련 과정이 있다. 훈련을 받은 평신도 지도자인 순장은 '다락방'이라는 소그룹을 이끈다. 이 구조는 다른 교회들이 참고하는 모델이 되었다. CAL세미나 35주년인 2021년 기준으로, 국내 세미나 수료자는 약 2만 1천 명이다. 미국·일본·브라질·대만 등 해외 세미나를 합하면 모두 약 2만 5천 9백 명의 목회자가 수료했다. 옥한흠은 1996년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 대표회장을 맡았다. 1998년에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창립해 2007년까지 대표회장으로 일하는 등 교회 갱신 활동에도 참여했다.
평가
이 운동을 높이 평가하는 쪽은 선교단체의 일로 여겨지던 제자훈련을 교회론에 근거해 지역 교회에 맞게 바꾸었다는 점을 주요 공헌으로 든다. 평신도를 교회 사역의 동역자로 세운 점도 함께 꼽는다. 옥한흠은 보수 복음주의 쪽뿐 아니라 진보 쪽에서도 존경받은 드문 목회자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편 교계 일부에서는 우려도 나온다. 제자훈련이 교회 성장을 위한 프로그램이 되거나, 교재 과정을 마치는 일로 좁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 옥한흠 - 위키백과
- 평신도 깨웠던 옥한흠 목사, 잠들다 - 뉴스앤조이
- 옥한흠 인물소개 - 교보문고
- 옥한흠 작가파일 - YES24
- CAL세미나 성료, 제자훈련 2.0 시대 연다 - 국민일보
- 국제제자훈련원 116기 제자훈련 지도자 세미나 성료 - 코람데오닷컴
- 국제제자훈련원 제124기 CAL세미나 - 기독교한국신문
- 국제제자훈련원의 발걸음, 그리고 비전 - 디사이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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