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9장 1-3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9:1-3
1 예수께서 길 가실 때에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의 장애를 두고 본인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려는 것이라고 답한 대목이다. 고난과 죄의 관계와 장애를 바라보는 시각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요한복음 9장은 예수가 날 때부터 눈이 먼 사람을 고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바로 앞 8장에서 예수는 성전에서 유대인들과 논쟁하다가 돌에 맞을 뻔한 뒤 그곳을 떠났다(요한복음 8:59). 길에서 이 사람을 본 제자들은 그의 장애가 "뉘 죄로 인함"인지, 곧 본인의 죄 때문인지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묻는다. 고난을 죄의 대가로 여기던 당시의 통념이 드러나는 질문이다. 예수는 어느 쪽도 아니라고 답한다. 이어 자신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고(9:5), 진흙을 눈에 바른 뒤 실로암 못에서 씻게 하여 그를 고친다. 뒤이어 바리새인들이 치유 사건을 조사하고 그 사람을 쫓아낸다. 장은 영적으로 눈먼 자에 대한 말씀(9:39-41)으로 끝난다. 이 구절은 9장 전체를 여는 질문과 답이다.
해석
- 인과응보에 대한 교정: 대부분의 해석자는 이 답이 개인의 고난을 특정한 죄의 벌로 단정하는 태도를 바로잡는다고 본다. 다만 죄와 고난의 관계 자체를 부정하는 말은 아니라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요한복음 5:14).
- 섭리 중심의 읽기: 개혁주의 전통에서는 하나님이 고난까지도 자신의 뜻 안에서 다스려 영광을 드러낸다는 섭리 교리와 연결해 읽는 경우가 많다.
- 목적 중심의 읽기: 하나님이 이 사람을 일부러 눈멀게 했다는 데보다, 이미 있는 고난의 자리가 하나님의 일이 드러나는 자리가 된다는 데 초점을 두는 읽기다. 하나님의 사랑과 회복을 강조하는 웨슬리 신학 계열에서 흔히 강조되며, 교단을 가리지 않고 널리 쓰인다.
- 표적으로서의 읽기: 요한복음은 기적을 예수가 누구인지 보여 주는 '표적'으로 서술한다. 이 관점에서 치유는 예수가 세상의 빛임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읽힌다.
논쟁과 쟁점
- 끊어 읽기: 헬라어 원문에는 구두점이 없다. 그래서 일부 학자는 3절 후반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를 4절에 이어 "그에게서 하나님의 일이 나타나도록 우리가 일해야 한다"로 읽자고 제안한다. 이렇게 읽으면 장애가 어떤 목적을 위해 주어졌다는 인상이 약해진다. 소수 견해로 알려져 있다.
- 번역어: 개역개정은 개역한글의 "소경"을 "맹인"으로 바꾸었다. 장애를 가리키는 말을 다듬은 변화로 설명된다.
- 장애를 보는 시각: 장애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 도구'로만 설명하면 장애인을 대상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장애 신학 쪽에서 제기된다.
한국 교회에서
질병이나 장애를 본인 또는 조상의 죄 탓으로 돌리는 말을 반박할 때 자주 인용된다. 가계저주론을 비판하는 쪽에서도 대표적인 근거 구절로 제시한다. 장애인 사역이나 고난 중의 위로를 다루는 설교에도 자주 쓰인다. 같은 장에 나오는 '실로암'은 교회와 시각장애인 관련 기관의 이름으로 흔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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