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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티아누스(51~96)는 1세기 로마 제국의 황제이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사도 요한을 밧모섬으로 유배 보내고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황제로 알려져 있다.

생애

도미티아누스(Titus Flavius Domitianus)는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의 둘째 아들이고 티투스 황제의 동생이다. 81년 형 티투스가 죽자 황제에 올라 15년 동안 다스렸다. 이는 아우구스투스 이후 가장 긴 재위에 속한다. 96년 궁정 안의 음모로 암살당했고, 원로원(로마의 귀족 의회)이 뒤를 이을 황제로 네르바를 세웠다. 그가 죽은 뒤 원로원은 그의 이름과 기념물을 공적 기록에서 지우는 '기억 말살' 처분을 내렸다.

통치와 업적

도미티아누스는 로마 시내에 큰 건축 사업을 벌였다. 팔라티노 언덕의 황궁을 지었고, 형 티투스를 기리는 개선문을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로마의 나보나 광장은 그가 세운 경기장 자리에 있다. 행정은 꼼꼼하게 챙겼으나 원로원 귀족과 갈등이 깊었다. 통치 후반에는 반역 혐의로 많은 사람을 처형해 공포 정치를 폈다는 평을 받는다. 로마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그가 자신을 "우리의 주이며 신"(dominus et deus noster)으로 부르게 했다고 기록했다.

기독교와의 관계

2세기 교부 이레나이우스는 요한계시록의 환상이 도미티아누스 통치 말기에 주어졌다고 적었다. 4세기 교회사가 에우세비우스는 이 기록을 이어받아, 요한이 이때 밧모섬에 유배되었다가 황제가 죽은 뒤 에베소로 돌아왔다는 전승을 남겼다. 에우세비우스는 그를 네로에 이어 그리스도인을 박해한 두 번째 황제로 소개한다.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는 황제의 친척 플라비우스 클레멘스가 '무신론'과 유대 관습에 빠졌다는 혐의로 처형되고, 그 아내 플라비아 도미틸라가 유배되었다고 기록했다. 교회 전통은 이 두 사람을 그리스도인으로 보아 왔다.

한국 교회에서의 언급

한국 교회에서 도미티아누스는 주로 요한계시록 설교와 성경공부에서 시대 배경으로 소개된다. 황제를 신으로 섬기라는 요구와 그에 맞선 소아시아 일곱 교회의 형편을 설명할 때 그의 이름이 등장한다. 일부 설교자와 연구자는 황제 숭배를 일제강점기의 신사참배 강요에 견주어 설명하기도 한다. 요한계시록 13장 1-10절의 짐승을 로마 황제와 연결해 읽는 해석에서도 함께 거론된다.

평가

요한계시록이 언제 기록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나뉜다. 도미티아누스 시대(90년대 중반)로 보는 견해가 다수이고, 네로 시대(60년대 후반)로 보는 견해도 있다. 박해의 규모에 대해서도 현대 역사학계에는 다른 의견이 있다. 로마 제국 전체에 걸친 조직적 박해였다는 근거는 부족하며, 지역적이고 산발적인 압박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또 그를 폭군으로 그린 기록 상당수는 그와 대립한 원로원 계층과 그 후대의 시각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그의 통치를 다시 평가하려는 연구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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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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