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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장 1-9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요한복음 14:1-9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4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5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7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8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9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뒤 예수가 근심하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집의 처소와 다시 오심을 약속하고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한 대목이다. 장례예배에서 자주 읽히며, 구원의 배타성과 삼위일체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요한복음 13~17장은 흔히 '고별 강화'(떠나기 전 남긴 긴 가르침)로 불린다. 예수는 심판이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앞둔 밤, 제자들의 발을 씻기고 가룟 유다가 나간 뒤 자신이 떠난다고 알린다. 베드로의 부인을 예고한 직후(요한복음 13:36-38) 이 말씀이 이어진다. 제자들의 근심에 대한 위로로 시작하여, 도마와 빌립의 질문에 답하는 대화로 진행된다.

해석

  • 처소와 다시 오심(1-3절): 전통적으로 많은 교회는 "아버지 집"을 신자가 죽은 뒤나 마지막 날에 들어갈 하늘의 거처로, "다시 와서"를 재림으로 읽는다. 일부 주석가는 같은 장 23절의 "거처"와 연결하여 성령을 통해 지금 신자 안에 거하시는 일로 보거나, 부활 후 나타나심까지 포함해 읽기도 한다.
  • "길이요 진리요 생명"(6절):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고백의 근거로 본다.
  •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9절): 정통 삼위일체 교리를 따르는 교회들은 아들이 아버지를 온전히 드러낸다는 뜻으로 읽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 됨과 구별을 함께 말하는 구절로 이해한다.

논쟁과 쟁점

  • 배타성 문제: 종교다원주의 쪽 신학자들은 6절을 다른 종교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제자 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한 말로 읽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복음주의 진영은 이런 읽기가 본문의 문자적 의미를 약화시킨다고 반론한다.
  • 양태론적 인용: 아버지와 아들을 같은 한 위격의 다른 모습으로 보는 양태론의 입장에서는 9절을 근거로 든다. 정통 교회들은 6절의 "아버지께로"처럼 아버지와 아들이 구별되어 나타나는 표현을 들어 반박한다.
  • 번역과 사본: 1절의 두 "믿으라"는 원문에서 명령으로도 서술로도 읽힐 수 있다. 2절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를 의문문으로 옮기는 번역본도 있다. 7절은 사본에 따라 "알았더면 … 알았으리로다"와 "알았으니 … 알 것이다"로 읽기가 갈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

1-3절은 장례예배와 입관·하관 예배에서 널리 읽히는 본문이다. 6절은 전도 현장과 전도지에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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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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