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9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고 부르신 근거가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은혜라고 말하는 구절이다. 은혜와 소명, 예정을 다룰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디모데후서는 전통적으로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을 때 제자 디모데에게 쓴 편지로 알려져 있다. 다만 목회서신의 저자를 바울로 보지 않는 학자들도 있다. 1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떠올린다. 이어 주를 증언하는 일과 갇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을 위해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한다(디모데후서 1:8). 9절은 이 권면의 근거로, 고난을 견딜 힘을 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설명한다. 10절은 이 은혜가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으로 드러났다고 이어 말한다. 9~10절은 짧은 고백문처럼 짜여 있어서,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을 옮겨 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해석
여러 교단이 공통으로 받아들이는 핵심이 있다. 구원과 부르심의 출발점이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은혜라는 점이다. 교단 간 차이는 "영원한 때 전부터" 주신 은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서 나타난다.
- 개혁주의의 읽기: 장로교 등 칼빈주의 전통은 이 구절을 예정론의 근거 구절로 읽는다. 예정론은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을 미리 정하셨다는 가르침이다. 이 전통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사람의 행위와 상관없이 개인을 선택하셨다고 본다.
- 웨슬리안·아르미니우스주의의 읽기: 감리교·성결교·나사렛교회 등 웨슬리 신학과 아르미니우스주의 전통은 영원 전에 정해진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으로 본다. 그 은혜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진다고 읽는다.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만 특정 개인의 구원 여부가 미리 정해졌다는 뜻으로는 읽지 않는다.
- "거룩하신 부르심"의 뜻: 거룩하신 하나님이 부르신 부르심으로 읽기도 하고, 거룩한 삶으로 부르는 부르심으로 읽기도 한다. 뒤의 읽기는 성화, 곧 거룩한 삶으로 자라 가는 과정을 강조하는 해석과 연결된다.
논쟁과 쟁점
이 구절은 예정과 자유의지 논쟁에서 양쪽이 모두 다루는 본문이다. 쟁점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이다. 하나님이 개인을 하나하나 선택하신 것으로 보는 해석이 있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전체를 향한 공동체적 선택으로 보는 해석이 있다.
번역에서는 개역개정이 "부르심"을 "소명"으로, "영원한 때 전부터"를 "영원 전부터"로 옮겼다. 그리스어 원문은 직역하면 "영원한 시간들 전에"에 가깝다.
한국 교회에서
구원과 부르심이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은혜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다루는 설교에서 인용된다. 소명, 곧 하나님의 부르심을 주제로 한 설교에서도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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