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크랜머
인물
토머스 크랜머(1489~1556)는 잉글랜드 종교개혁을 이끈 캔터베리 대주교로, 성공회 예배의 바탕인 「공동기도서」를 엮었다. 메리 1세 때 화형당했다.
생애
크랜머는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공부하고 그곳에서 가르쳤다. 헨리 8세가 아라곤의 캐서린과의 혼인을 무효로 하려 할 때 왕의 편에서 활동했다. 1533년 캔터베리 대주교(잉글랜드 교회에서 가장 높은 성직)가 되었고, 그해 왕과 캐서린의 혼인이 무효라고 선언했다. 에드워드 6세 때(1547~1553) 개신교 개혁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가 즉위하자 반역과 이단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감옥에서 여러 차례 자기 신앙을 철회하는 문서에 서명했으나, 처형 당일 이를 모두 취소했다. 1556년 옥스퍼드에서 화형당했다. 이때 철회서에 서명한 오른손을 먼저 불 속에 넣었다고 전해진다.
사역과 업적
- 공동기도서: 1549년과 1552년에 영어로 된 「공동기도서」를 엮어, 라틴어 미사를 대신하는 영어 예배를 마련했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었으며 오늘날까지 성공회 예배의 기준이 되고 있다.
- 영어 성경과 기도문: 영어 성경을 교회에 두도록 지지했다. 1544년에는 영어 연도(사제와 회중이 번갈아 드리는 기도)를 펴냈다.
- 교리 정리: 설교집(1547)과 「42개 신조」(1553)를 펴냈다. 42개 신조는 뒤에 성공회 「39개 신조」의 바탕이 되었다.
- 신학: 성찬에 관해서는 점차 화체설(빵과 포도주가 실제 몸과 피로 바뀐다는 천주교 교리)에서 멀어졌다. 그리스도가 믿는 이에게 영적으로 임재한다는, 개혁교회와 가까운 입장으로 기울었다고 평가된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대한성공회는 공동기도서 전통을 이어받아 우리말 기도서로 예배를 드린다. 이런 점에서 크랜머는 한국 성공회 예배의 먼 뿌리로 여겨진다. 영어권 결혼 서약의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병들 때나 건강할 때나" 같은 표현도 공동기도서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가
성공회와 개신교 쪽에서는 그를 종교개혁의 순교자로 기린다. 존 폭스의 「순교자 열전」이 이런 시각을 널리 퍼뜨렸다. 그가 남긴 기도문은 영어 예배 문학의 고전으로 꼽힌다.
비판도 있다. 왕의 이혼과 교회 정책에 지나치게 순응했다는 지적이 있다. 에드워드 6세 때 이단으로 몰린 사람의 처형에 관여한 점도 문제로 거론된다. 죽음 앞에서 신앙 철회를 거듭한 행적을 두고는 인간적 약함으로 보는 견해와 끝내 신념을 지킨 결단으로 보는 견해가 함께 있다. 천주교 쪽에서는 전통적으로 그를 잉글랜드 교회를 로마에서 떼어 낸 인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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