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세 친구
인물 · 성경 인물 · 같은 말: 엘리바스, 빌닷, 소발
욥의 세 친구는 욥기에 나오는 데만 사람 엘리바스, 수아 사람 빌닷, 나아마 사람 소발이다. 고난당한 욥을 위로하러 왔다가 욥의 죄를 탓하는 변론을 벌였고,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다.
성경의 기록
욥이 재산과 자녀를 잃고 병에 걸리자 세 친구가 약속하고 함께 찾아온다. 이들은 욥을 알아보지 못할 만큼 상한 모습을 보고 소리 내어 울었다. 이어 칠 일 밤낮을 그와 함께 땅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욥기 2:11-13).
이후 욥기 4장부터 27장까지 욥과 세 친구가 세 차례에 걸쳐 돌아가며 변론한다.
- 엘리바스(4~5장, 15장, 22장): 밤에 본 환상을 근거로 들며, 죄 없이 망한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욥기 4:7).
- 빌닷(8장, 18장, 25장): 욥의 자녀가 죄를 지어 벌을 받은 것이라고 하고, 조상들의 전통에 묻기를 권한다(욥기 8:4, 8:8).
- 소발(11장, 20장): 가장 날카롭게 말하며, 하나님이 욥의 죄보다 덜 벌하셨다고까지 한다(욥기 11:6). 세 번째 차례에는 소발의 발언이 없다.
세 사람의 주장은 공통적으로 인과응보, 곧 고난은 죄의 결과라는 생각에 기대어 있다. 욥은 이들을 쓸모없는 위로자라고 부르며 반박한다(욥기 16:2). 32~37장에서는 젊은 엘리후가 따로 등장하지만, 세 친구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마지막에 하나님은 엘리바스에게 "너와 네 두 친구"가 욥처럼 옳게 말하지 못했다며 노하신다. 그리고 수소와 숫양 각각 일곱으로 번제를 드리고 욥의 기도를 받으라고 명하신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기도하자 하나님은 욥의 처지를 회복시키셨다(욥기 42장 7-10절).
성경 안에서의 의미
세 친구는 욥기 안에서 당시 통념이던 응보 사상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의 변론은 욥의 항변과 하나님의 응답을 돋보이게 한다. 같은 물음은 신약에도 이어진다. 예수는 맹인이 된 까닭을 묻는 제자들에게 그 사람이나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니라고 답하셨다(요한복음 9장 1-3절).
신약은 세 친구를 이름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고린도전서 3:19에서 바울이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는 구절을 인용하는데, 이는 엘리바스의 말(욥기 5:13)이다.
해석과 논점
- 말의 내용과 적용: 하나님께 책망받은 이들의 말을 바울이 성경으로 인용한 데서 해석상의 물음이 생긴다. 흔한 설명은 이들의 말 가운데 일반 원리로는 옳은 내용이 있으나, 그것을 욥의 처지에 잘못 적용했다는 것이다. 장 칼뱅도 욥기 설교에서 이런 관점을 보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긍정적 면: 칠 일 동안 말없이 곁에 머문 처음 모습은 고난당한 이를 대하는 좋은 본보기로 자주 언급된다.
- 덧붙여진 전승: 성경 본문은 이들을 각 지역 출신으로만 소개한다. 반면 칠십인역 욥기 끝에 덧붙은 글과 외경 문헌에는 이들을 각 지역의 왕으로 소개하는 전승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엘리바스를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창세기 36:10-11)와 같은 인물로 보거나, 빌닷의 출신지 수아를 아브라함의 아들 수아(창세기 25:2)와 연결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문이 이를 밝히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세 친구는 주로 고난과 위로를 다루는 설교에 등장한다. 아픈 사람의 고난을 섣불리 죄의 결과로 판단하지 말라는 교훈의 예로 많이 쓰인다. 심방과 기독교 상담에서는 경청과 함께 있어 주기의 중요성을 말할 때 세 친구의 칠 일 침묵과 이후의 정죄가 대비되어 인용된다. 번영신학이나 가계저주론을 비판하는 이들은 이 가르침들을 고난을 곧 죄나 저주의 결과로 보는 세 친구의 논리에 빗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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