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나티아 가도
역사
에그나티아 가도는 기원전 2세기 후반 로마가 발칸반도를 가로질러 놓은 간선 도로로, 사도 바울이 빌립보와 데살로니가로 갈 때 지난 길로 알려져 있다.
개요
에그나티아 가도(라틴어 Via Egnatia)는 로마 제국이 아드리아해 동쪽 해안에서 발칸반도를 동서로 가로질러 마게도냐와 트라키아로 이어지게 놓은 군사·교역 도로이다. '가도(街道)'는 큰 도시와 도시를 잇는 간선 도로를 뜻한다. 신약성경은 이 길의 이름을 직접 적지 않는다. 그러나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에서 지난 도시들이 이 길 위에 놓여 있어서, 성경 지리와 초대 교회 선교를 다룰 때 자주 언급된다.
배경
로마는 기원전 168년 마케도니아 왕국을 무너뜨렸고, 기원전 146년 무렵 이 지역을 속주(로마가 총독을 보내 직접 다스리는 지역)로 편입하였다. 이탈리아에서 아드리아해를 건너 동방으로 군대와 물자를 빠르게 옮길 길이 필요했다. 도로 이름은 마케도니아 총독(프로콘술)이었던 그나이우스 에그나티우스에게서 왔다. 테살로니키 근처에서 그의 이름이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새겨진 이정표가 발견되어 이 사실이 확인되었다.
전개
- 기원전 2세기 후반: 건설이 시작되었다. 정확한 해는 확실하지 않으나 대체로 속주 편입 직후로 본다. 서쪽 출발점은 아드리아해 연안의 디라키움(오늘날 알바니아 두러스)과 아폴로니아였다. 길은 산지를 넘어 마케도니아 평원을 지나 데살로니가, 암비볼리, 빌립보, 네압볼리(오늘날 그리스 카발라)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트라키아의 헤브로스강 근처까지였고, 뒤에 비잔티움(오늘날 이스탄불)까지 이어졌다. 전체 길이는 약 1,100km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기원전 1세기: 로마 내전의 주요 무대가 되었다. 기원전 42년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가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물리친 필리피 전투가 이 길 옆 빌립보 근처에서 벌어졌다. 그 뒤 빌립보에는 로마 퇴역 군인이 정착하였고, 사도행전 16:12는 이 도시를 "로마의 식민지"라고 적는다.
- 기원후 1세기: 바울 일행은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를 거쳐 네압볼리에 내렸고, 빌립보로 들어갔다(사도행전 16:11-12). 이어 "암비볼리와 아볼로니아로 다녀가 데살로니가에 이르니"(사도행전 17:1)라는 기록에 나오는 도시들이 모두 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대체로 일행이 에그나티아 가도를 걸었다고 본다. 여기서 아볼로니아는 서쪽 끝의 같은 이름 항구가 아니라 마게도냐 안의 다른 도시이다.
결과와 영향
이 길은 로마와 동방을 잇는 통로가 되어 군대와 관리, 상인, 여행자가 오갔다. 바울이 세운 빌립보 교회와 데살로니가 교회는 이 길 위의 도시에 자리했다. 그래서 복음이 로마의 도로망을 따라 퍼져 나갔다는 설명에 대표 사례로 쓰인다. 데살로니가전서 1:8의 "주의 말씀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라는 구절을 이 교통로와 연결해 읽는 해석도 있다. 로마가 동서로 나뉜 뒤에도 비잔티움 제국 시대와 그 이후까지 이 길은 발칸반도의 주요 교통로로 쓰였다. 오늘날 그리스 북부를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도 이 길의 이름을 따서 '에그나티아 오도스'라고 부른다.
평가
역사학에서는 에그나티아 가도를 로마가 동방을 지배하고 하나로 묶는 데 쓴 대표적인 기반 시설로 평가한다. 교회사와 성경 연구에서는 바울의 전도 여행의 실제 경로를 그려 보는 단서로 중요하게 다룬다. 다만 사도행전은 도로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 따라서 바울이 이 길을 따라갔다는 설명은 기록된 도시들의 위치에 근거한 추정이며, 구간마다 실제로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확정할 수 없다. 로마서 15:19의 "일루리곤까지"라는 표현을 두고 바울이 이 길을 따라 서쪽까지 갔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 이 역시 추정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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