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한 재판관 비유
성경 · 비유 · 같은 말: 과부와 재판관
누가복음 18장 1~8절에 나오는 예수의 비유로, 불의한 재판관도 끈질긴 과부의 호소를 들어주는데 하나님은 더욱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신다는 내용으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 것을 가르친다.
본문과 내용
누가복음 18:1-8에만 나오는 비유이다. 누가는 비유 앞에 그 목적을 먼저 밝힌다. 예수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가르치려고 이 비유를 말했다는 것이다(누가복음 18장 1절). 개역개정은 재판관을 "재판장"으로 옮겼다.
비유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무시하는 재판장이 있었다.
- 한 과부가 자주 찾아와 자기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곧 공정하게 판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 재판장은 얼마 동안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과부가 계속 와서 괴롭게 할 것을 생각해 판결해 주기로 한다.
- 예수는 불의한 재판장도 이렇게 하는데 하나님이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않겠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속히 풀어 주실 것이라고 말한다.
- 비유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물음으로 끝난다.
배경
구약 율법은 과부를 고아·나그네와 함께 보호해야 할 약자로 꼽는다(출애굽기 22:22, 신명기 24:17, 이사야 1:17). 시편 68:5는 하나님을 "과부의 재판장"이라 부른다. 남편을 잃은 여성은 법정에서 자기 권리를 대신 주장해 줄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과부의 처지와 의무를 저버린 재판장이 대비되면서 이야기의 긴장이 생긴다.
재판장이 "괴롭게 하리라"고 걱정하는 대목의 헬라어 '휘포피아조'는 본래 '눈 아래를 치다', 곧 멍들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지치게 하다', '성가시게 하다'는 비유적 의미로 쓰였다고 보는 해석이 많다.
성경 전체에서의 의미
이 비유는 인자의 오심과 하나님 나라를 다룬 누가복음 17:20-37 바로 뒤에 놓여 있다. 그래서 재림을 기다리며 고난받는 공동체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를 이어 가라는 권면으로 읽힌다. 바로 뒤의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18:9-14)도 기도를 다룬다. 한밤중에 찾아와 빵을 청하는 친구 이야기(누가복음 11장 5-13절)와 함께, 누가복음이 기도를 강조한 대목으로 자주 묶여 읽힌다.
해석과 논점
- 대조의 논법: 많은 해석자는 이 비유가 하나님을 불의한 재판장에 견준 것이 아니라 대조한 것이라고 본다. "하물며" 논법으로, 불의한 자도 들어주는데 의로운 하나님은 더욱 들으신다는 뜻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귀찮아서 응답한다는 식의 우의적(寓意的, 인물과 사물에 하나하나 다른 뜻을 대입하는) 해석은 경계된다.
- 끈질긴 기도와 섭리: 칼빈주의 전통에서는 대체로 기도가 하나님의 뜻을 바꾼다기보다 하나님이 섭리 안에서 정하신 수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순절주의와 성결 계통에서는 응답이 올 때까지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의 본보기로 더 자주 인용한다. 강조점의 차이일 뿐, 어느 쪽도 꾸준한 기도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 원한을 푼다는 것: 비유를 개인의 소원 성취보다 억울한 자의 신원(伸冤, 원통함을 풀어 줌), 곧 정의 회복으로 읽는 해석도 있다. 종말에 하나님이 백성의 억울함을 바로잡는다는 약속으로 보는 것이다.
- 번역의 문제: 7절 하반절은 원문의 뜻이 분명하지 않아 "오래 참으시겠느냐", "지체하시겠느냐" 등으로 다르게 옮겨진다.
- 본문에 없는 내용: 다툼의 내용이 재산이나 상속 문제였다거나, 과부가 뇌물을 줄 수 없어서 판결이 미뤄졌다는 설명이 흔히 덧붙는다. 이는 당시 상황을 미루어 짐작한 것이고, 본문에는 그런 말이 없다.
한국 교회에서
새벽기도회, 특별새벽기도회, 작정 기도를 앞두고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는 주제의 설교 본문으로 널리 쓰인다. 오랫동안 응답을 기다리는 교인을 격려할 때도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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