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4장 6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베드로전서 4: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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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체로는 심판을 받아도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는 것이라는 구절이다.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와 사후 구원 기회 문제와 엮여 해석이 엇갈린다.
문맥
베드로전서는 소아시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이다. 편지는 저자를 사도 베드로로 소개한다(베드로전서 1:1). 4장 1~5절은 신자들이 예전처럼 방탕한 생활에 어울리지 않자 이방인 이웃이 이상히 여기고 비방한다고 말한다. 이어 그 이웃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 앞에서 셈을 드리게 된다고 한다(4:5). 6절은 앞 절의 "죽은 자"라는 말을 이어받아,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목적을 설명한다. 이 구절은 바로 앞 3장 19~20절의 "옥에 있는 영들" 본문과 함께 베드로전서에서 풀기 어려운 대목으로 꼽힌다.
해석
- 생전에 복음을 듣고 죽은 신자로 보는 읽기: 많은 복음주의 주석가가 따르는 해석이다. "죽은 자들"을 살아 있을 때 복음을 듣고 믿었으나 그 뒤 세상을 떠난 신자로 본다. 그들은 육체로는 다른 사람처럼 죽음을 겪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영으로 살아 있다는 위로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이 해석은 "전파되었으니"가 과거형이라는 점과, 5절의 "죽은 자"가 실제로 죽은 사람을 뜻한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 그리스도의 음부 강하와 잇는 읽기: 음부 강하는 그리스도가 죽은 뒤 죽은 자들의 세계(음부, 저승)에 내려갔다는 고백이다. 초대교회 교부 일부와 천주교는 이 구절을 3장 19절과 함께 이 사건과 연결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도 그리스도의 저승 강하를 설명하면서 이 구절을 인용한다.
- 영적으로 죽은 자로 보는 읽기: "죽은 자"를 죄 가운데 있는 사람으로 보는 해석이다(에베소서 2:1 참조). 다만 5절의 "죽은 자"와 이어지는 흐름 때문에 소수 견해로 여겨진다.
- "사람처럼"과 "하나님처럼": 그리스어로는 "사람을 따라", "하나님을 따라"로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을 사람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을 맞세운 표현으로 풀기도 하며, 번역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논쟁과 쟁점
가장 큰 쟁점은 이 구절이 죽은 뒤에도 구원받을 기회가 있다는 뜻인가 하는 문제이다.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는 이 구절을 죽은 자의 영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는 자기들 가르침의 근거로 든다. 반면 장로교·감리교·침례교 등 대다수 개신교 교단은 사후 구원 기회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이 한 번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다는 히브리서 9장 27절 등을 근거로 들며, 이 구절을 그런 뜻으로 읽는 것은 문맥을 벗어난 해석이라고 본다.
음부 강하를 고백하는 전통 안에서도 이해는 갈린다. 루터교는 이를 그리스도의 승리 선포로 이해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4문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겪은 영혼의 고통으로 풀이한다. 두 전통 모두 음부 강하를 죽은 뒤 회개할 기회로 보지는 않는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개신교에서 널리 쓰이는 사도신경 번역에는 "음부에 내려가시고"라는 고백이 들어 있지 않다. 한국 천주교의 사도신경에는 "저승에 가시어"라는 고백이 있다. 그래서 한국 개신교에서 이 구절은 주로 음부 강하 교리나 사후 구원 기회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서 언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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