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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3장 11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골로새서 3:11

거기는 헬라인과 유대인이나 할례당과 무할례당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1절은 그리스도 안의 "새 사람"에게는 민족·종교 전통·문화·신분의 구별이 기준이 될 수 없고 그리스도가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 교회의 하나 됨과 차별 극복을 말할 때 자주 인용된다.

문맥

골로새서는 전통적으로 바울이 소아시아의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로 알려져 있다. 근대 이후 일부 학자는 바울의 제자가 썼다고 보기도 한다. 2장은 철학과 규례를 앞세우는 가르침을 경계한다. 3장 1-17절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신자가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고 권한다. 바로 앞 골로새서 3장 10절은 새 사람이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새로워진다고 말한다. 이 절의 "거기는"은 그 새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어진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읽는다.

열거된 짝은 당시 사람들을 나누던 구분이다.

  • 헬라인과 유대인: 민족의 구분이다.
  • 할례당과 무할례당: 율법 전통을 따르는지에 따른 구분이다.
  • 야인(그리스어를 쓰지 않는 사람)과 스구디아인: 문화의 구분이다. 스구디아인은 흑해 북쪽의 유목민으로, 그리스·로마 사람들이 특히 거칠다고 여긴 이들로 알려져 있다.
  • 종과 자유인: 신분의 구분이다.

해석

  • 교회론적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절을 교회 안에서 어떤 출신도 우열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선언으로 읽는다. 앞뒤의 옷을 벗고 입는 표현을 세례와 연결해 보는 해석도 있다.
  • 기독론적 읽기: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를 1장 15-20절에서 노래한 그리스도의 으뜸 되심과 잇는 읽기이다. 이 표현은 만물이 곧 신이라는 범신론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새 공동체의 전부이자 그 중심이라는 고백으로 이해된다.
  • 윤리적 읽기: 이 절을 인종·계층 차별을 넘어서는 근거로 삼는 읽기이다. 이 해석은 교회 안의 관계와 사회 윤리 논의에서 자주 쓰인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같은 편지 3장 22절-4장 1절에는 종에게 주인에게 순종하라고 권하는 가정 규범이 나온다. 그래서 "종이나 자유인이 분별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사회 제도의 철폐까지 뜻하는지가 물음이 된다. 이 말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분이 갖는 의미만 바꾼다는 견해가 있고, 신분 질서를 안에서부터 허무는 씨앗이라는 견해도 있다. 같은 편지에 언급되는 오네시모의 이야기(빌레몬과 오네시모)도 이 논의에서 함께 다뤄진다.

갈라디아서 3장 26-29절에 있는 "남자나 여자" 짝이 이 절에는 없다는 점도 학자들이 주목한다. 그 이유는 해석자마다 다르게 설명한다.

번역에서는 개역개정이 개역한글의 "분별"을 "차별"로, "할례당"을 "할례파"로 고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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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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