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
인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1646~1716)는 독일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이다. 루터교 평신도 학자로, 악과 고통의 문제를 다룬 《신정론》을 써서 '신정론'이라는 말을 널리 알렸다.
생애
1646년 작센의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도덕철학 교수였고, 집안은 루터교 신앙을 따랐다.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철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1667년 알트도르프 대학교에서 법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마인츠 선제후를 섬기는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1672년부터 1676년까지 파리에 머물렀다. 1676년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하노버의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 가문을 섬기며 도서관장과 궁정 고문관으로 일했다. 1700년 베를린에 세워진 과학 아카데미의 초대 회장을 맡았다. 1716년 하노버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학자였다. 철학·수학·법학·역사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했으며, 수학에서는 뉴턴과 별도로 미적분을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학과 관련된 대표작은 1710년 프랑스어로 펴낸 《신정론》이다.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은 그리스어 '하나님'(theos)과 '의'(dike)를 합친 말이다. 세상에 악과 고통이 있는데도 하나님이 선하고 의롭다는 것을 변호하는 논의를 가리키며, 라이프니츠가 만든 말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전능하고 선한 하나님이 가능한 여러 세계 가운데 '가능한 최선의 세계'를 창조했다고 보았다. 세상의 악은 더 큰 선을 이루는 전체 질서 안에서 허용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1714년에 쓴 《모나드론》에서는 세계가 더는 나눌 수 없는 정신적 단위인 '모나드'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았다. 또 하나님이 처음부터 모나드들 사이의 조화를 정해 두었다는 '예정 조화'설을 폈다.
교회 일치에도 관심을 두었다. 프랑스의 가톨릭 주교 보쉬에 등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천주교와 개신교의 재일치를 논의했고, 루터교와 개혁교회의 연합 방안도 모색했다. 이 시도들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 교회에 직접 영향을 준 인물은 아니다. 다만 그의 책 제목에서 나온 '신정론'이라는 말은 한국 신학계와 교회에서도 고난과 악의 문제를 다룰 때 쓰인다. 신학교의 조직신학 강의와 기독교 변증 서적에서는 그의 '최선의 세계' 논증이 고전적 이론으로 소개된다. 하나님의 섭리와 고난의 관계를 다루는 논의에서도 언급되곤 한다.
평가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꾀한 근대 초기의 대표적 사상가로 평가된다. 그러나 비판도 많다.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뒤 볼테르는 소설 《캉디드》(1759)에서 "이 세상은 가능한 최선의 세계"라는 낙관론을 풍자했다. 칸트는 1791년 논문에서 철학적 신정론의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고 보았다.
신학 안에서도 견해가 갈린다. 그의 논증을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성으로 변호하려 한 진지한 시도로 보는 이들이 있다. 반면 개혁주의 전통의 일부는 그가 하나님의 주권적 자유를 이성의 원리에 묶어 두고, 악의 문제를 성경의 계시보다 철학적 추론으로 풀려 했다고 비판한다. 욥기처럼 고난의 이유를 끝내 다 설명하지 않는 성경 본문을 들어, 신정론 자체에 신중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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