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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장 8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이사야 6: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성전 환상 중에 보낼 사람을 찾으시는 주의 음성을 듣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한 구절이다. 소명과 헌신, 선교 파송을 말하는 본문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이사야 6장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기원전 8세기 중엽)에 이사야가 본 환상을 기록한다. 이사야는 높은 보좌에 앉으신 주를 보고, 스랍들이 "거룩하다"를 세 번 외치는 소리를 듣는다(6:3). 그는 자신이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며 탄식한다(6:5). 그러자 스랍이 제단의 숯불을 그의 입에 대고 죄가 사하여졌다고 선언한다(6:6-7). 8절은 그 직후 주께서 보낼 사람을 찾으시는 물음과 이사야의 응답이다. 이어지는 9-10절에서 이사야가 받은 사명은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는 심판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다. 11-13절은 그 사명이 성읍들이 황폐해질 때까지 이어진다고 말하고, 그 뒤에 그루터기로 남는 "거룩한 씨"를 언급한다.

해석

  • 소명 기사로서의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장을 모세(출애굽기 3장), 예레미야(예레미야 1장), 에스겔(에스겔 1-3장)의 부르심과 나란히 놓고 선지자 소명 이야기로 읽는다. 모세와 예레미야는 망설였지만 이사야는 스스로 나섰다는 점이 자주 지적된다.
  • "우리"에 대한 읽기: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라고 복수형으로 말씀하신 대목은 해석이 갈린다. 고대 교회 이래 여러 그리스도교 해석자는 이를 삼위일체를 암시하는 표현으로 읽어 왔다. 많은 현대 구약학자는 열왕기상 22:19-22처럼 하나님이 하늘의 무리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천상 회의' 장면으로 본다. 위엄을 나타내는 복수(장엄 복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요한복음 12:41은 이사야가 주의 영광을 보았다고 기록하는데, 이 구절은 이 환상을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해석의 근거로 쓰인다.
  • 응답의 표현: "내가 여기 있나이다"는 히브리어 '힌네니'를 옮긴 말이다. 아브라함(창세기 22:1)과 사무엘(사무엘상 3:4)도 같은 말로 응답했기 때문에, 부르심에 즉시 순종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 예배의 흐름으로 읽기: 예배학에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뵘, 죄의 고백, 사죄, 부르심, 헌신으로 이어지는 이 장의 순서를 예배 구조의 본보기로 들기도 한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이 구절은 선교 헌신을 촉구하는 본문으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8절만 떼어 인용하면 9-13절의 문맥이 가려진다는 지적이 있다. 그 문맥에서 이사야의 사명은 듣지 않을 백성에게 심판을 전하는 일이었다. 또 이 부르심을 선지자라는 특별한 직무에 한정된 것으로 볼지, 모든 신자의 소명에 적용할 수 있는 본보기로 볼지에 대해서도 해석자마다 강조점이 다르다.

한국 교회에서

한국 교회에서 이 구절은 선교사 파송예배, 선교 주일, 수련회의 결단 시간, 임직식 같은 자리에서 헌신을 다짐하는 본문으로 자주 읽히고 설교된다. "나를 보내소서"라는 표현은 단기선교팀이나 선교 모임의 표어로도 흔히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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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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