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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8장 18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신자가 지금 겪는 고난은 장차 드러날 영광과 견줄 수 없다고 말한 구절이다. 고난 중의 위로와 종말의 소망을 말할 때 교단을 가리지 않고 자주 인용된다.

문맥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인 로마서 8장에 나오는 말이다. 로마서는 기원후 50년대 중후반에 고린도에서 쓴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바로 앞 8:17에서 바울은 신자가 하나님의 자녀이자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을 자(후사)이며,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18절은 이 고난과 영광의 관계를 정리하는 문장이다. 이어지는 19~25절에서는 피조물 전체가 탄식하며 회복을 기다린다는 내용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는 소망을 이야기한다.

"생각건대"로 옮긴 그리스어 동사(로기조마이)는 '계산해 따져 본 끝에 내린 판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구절을 막연한 추측이 아니라 바울이 확신을 가지고 내린 결론으로 읽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석

  • 종말론적 읽기: 여러 교단의 주석가들은 "장차 나타날 영광"을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루어질 몸의 부활과 만물의 회복으로 본다. 8:23의 "몸의 구속"과 연결하는 읽기로, 종말론의 맥락에서 이해한다.
  • 개혁주의의 읽기: 장로교 등 개혁주의 전통은 이 구절을 8:30의 '영화롭게 하심'과 함께 읽는다. 영광은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서 반드시 이루어질 일이며, 고난은 그 길에서 성도가 거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 읽기는 성도의 견인 교리와도 맞닿아 있다.
  • 웨슬리 신학 전통의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은 장래의 영광을 바라보는 소망이 현재의 삶을 변화시키는 성화의 동력이 된다는 점을 함께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 고난의 범위: 해석자에 따라 "현재의 고난"의 범위가 다르다. 그리스도를 따르다 받는 박해에 한정해 보는 견해가 있고, 19~22절의 흐름을 근거로 질병과 죽음을 포함한 이 시대의 모든 고통으로 넓혀 보는 견해가 있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교단 사이에 뚜렷한 교리 논쟁이 있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몇 가지 적용 문제가 제기된다.

  •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말로 쓰일 위험: 고통받는 사람에게 이 구절을 "참으라"는 뜻으로 건네면 그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말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바울이 바로 뒤에서 피조물과 신자의 '탄식'을 함께 말한다는 점이 근거로 든다.
  • 번영신학과의 대비: 이 구절이 고난을 신자의 정상적인 삶의 일부로 전제한다는 점에서, 신앙이 곧 현세의 형통으로 이어진다는 번영신학을 비판하는 근거로 인용되기도 한다.
  • 번역의 차이: "우리에게"로 옮긴 표현은 '우리 안에'로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영광이 신자에게 드러나 보이는 것인지, 신자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갈린다.

한국 교회에서

투병 중인 교인을 찾아가는 심방, 장례예배, 고난주간 설교 등에서 위로와 소망을 전하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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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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