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3장 23-24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누가복음 13:23-24
23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 저희에게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가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라는 물음에 수를 답하지 않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답한 구절이다. 구원의 은혜와 인간의 애씀이 어떤 관계인지를 묻는 본문으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누가복음 13장 22절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여러 성과 마을에서 가르쳤다고 적는다. 이 장면에서 한 사람이 구원받는 사람이 적으냐고 묻는다. 예수는 질문한 사람에게만 답하지 않고 "저희", 곧 함께 듣던 무리를 향해 말한다.
이어지는 25-30절에서는 집주인이 문을 닫은 뒤에 "주의 앞에서 먹고 마셨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거절당한다. 반대로 동서남북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잔치에 앉는다. 비슷한 말씀이 마태복음 7장 13-14절의 산상수훈에도 있다. 다만 마태복음은 넓은 길과 좁은 길을 대조하고, 누가복음은 닫히는 집 문의 이미지를 쓴다.
해석
- 질문을 돌리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예수가 구원받을 사람의 수라는 추상적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고 본다. 대신 묻는 사람 자신이 들어가고 있는지를 돌아보도록 방향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 문맥 중심의 읽기: 25-30절과 함께 읽으면, 예수와 가까이 지냈다는 사실이나 혈통·소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경고가 된다. 이 읽기에서 "구하여도 못하는 자"는 애씀이 모자란 사람이라기보다 문이 닫힌 뒤에야 찾는 사람으로 풀이된다.
- 개혁주의 전통의 읽기: 장로교 등 칼빈주의 전통은 좁은 문을 그리스도 자신과 연결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힘쓰라'는 구원을 얻어 내는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부름받은 사람이 보이는 진지한 응답으로 설명된다.
- 웨슬리 전통의 읽기: 감리교·성결교 등 웨슬리 신학 전통은 이 명령에서 은혜에 응답할 인간의 책임과 성화(거룩해져 가는 과정)를 향한 분투를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논쟁과 쟁점
- 애씀과 은혜: '힘쓰라'로 옮긴 헬라어 동사(아고니조마이)는 경기에서 온 힘을 다해 겨룬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명령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칭의 교리와 어떻게 조화되는지가 오래 물어져 왔다. 이 문제는 예정과 자유의지 논의와 맞물려, 교단마다 은혜와 인간의 응답 가운데 어디에 무게를 두는지가 다르다.
- 구원받는 자의 수: 이 구절을 근거로 구원받는 사람이 적다고 단정하는 데에는 반론이 있다. 예수가 수를 묻는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았고, 29절이 사방에서 오는 많은 사람을 말한다는 것이다.
- 사본: 현대 비평 본문은 이 구절의 '문'을 집 문을 뜻하는 말로 읽는다. 반면 일부 후대 사본과 이를 따른 번역은 마태복음처럼 성문을 뜻하는 말로 적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문맥을 떠난 쓰임: '좁은 문'은 입시·취업 경쟁을 가리키는 일상어로 널리 쓰인다. 경쟁에서 이긴 소수를 뜻하는 이 쓰임은 본래 문맥과 거리가 있다. 앙드레 지드의 소설 「좁은 문」도 이 구절에서 제목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서
'좁은 문'은 마태복음 7장 13-14절과 함께 한국 교회 설교에서 자주 다루는 주제이다. 주로 신앙의 결단과 경건한 삶을 권하는 본문으로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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