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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6장 2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고린도전서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거든 저주를 받을찌어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전서 끝인사에서 친필로 적은 구절로, 주를 사랑하지 않는 자에 대한 '아나테마'(저주)와 아람어 '마라나타'가 담겨 있다. 초기 교회의 재림 신앙과 예배 언어를 보여 주는 구절로 자주 인용된다.

문맥

고린도전서를 마무리하는 끝인사의 일부이다. 바울은 에베소에 머물면서(고린도전서 16:8) 고린도 교회에 이 편지를 보냈다. 그는 바로 앞 절(16:21)에서 "친필로" 문안한다고 밝힌다. 편지 본문은 대필자가 받아 적고, 마지막 몇 줄을 바울이 직접 썼다는 뜻으로 읽힌다. 이 구절 다음 절은 "주 예수의 은혜"를 비는 축복이다. 저주와 축복, 그리고 주의 오심에 관한 짧은 말이 바울 자신의 손으로 나란히 쓰인 셈이다.

"저주를 받을지어다"로 옮긴 말은 그리스어 '아나테마'이다. 하나님의 심판에 넘겨져 공동체에서 떼어 놓인 상태를 가리킨다.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아람어(예수 시대 유대 지역의 일상 언어) '마라나타'를 옮긴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어로 쓴 편지 안에 이 말을 번역하지 않고 아람어 그대로 적었다.

해석

  • 교회 안을 향한 경고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이 구절을 교회 밖 사람을 향한 저주가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에게 주는 경고로 읽는다. 바울은 편지 내내 분열과 교만, 성찬과 부활 문제를 꾸짖었다. 그 끝에서 주를 향한 사랑이 신앙의 기준임을 짧게 못 박았다는 해석이다. '사랑하다'에 바울이 다른 곳에서 잘 쓰지 않는 동사(필레오)가 쓰인 점을 들어, 바울 이전부터 쓰이던 정형구를 옮겨 적은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 '마라나타'를 끊어 읽는 두 방식: 아람어 원문을 '마라나 타'로 끊으면 "우리 주여, 오소서"라는 기도가 된다. '마란 아타'로 끊으면 "우리 주께서 오신다(오셨다)"라는 선언이 된다. 개역개정과 개역한글의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는 선언 쪽 읽기이다. 요한계시록 22:20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와 견주어 기도로 읽는 견해도 널리 받아들여지며, 일부 현대 번역은 '마라나타'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기고 기원의 뜻을 덧붙인다.
  • 예배 배경설: 초기 교회 문서 『디다케』의 성찬 기도 끝부분에도 "거룩한 사람은 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회개하라. 마라나타"라는 말이 나온다. 이를 근거로 이 구절이 초기 교회 성찬 모임에서 쓰이던 말과 이어져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다. 다만 편지가 회중 앞에서 낭독된 뒤 성찬으로 이어졌으리라는 추정에 기댄 가설이며, 확증되지는 않았다.

적용을 둘러싼 물음

교단에 따라 해석이 뚜렷이 갈리는 구절은 아니다. 다만 '저주'라는 강한 말 때문에 몇 가지 물음이 제기된다.

  • 사랑과 저주: 사랑을 길게 다룬 13장이 들어 있는 같은 편지에 저주가 나온다는 점이 자주 질문된다. 많은 해설은 이것이 바울이 사람을 직접 저주한 말이 아니라 판단을 하나님께 맡기는 형식이라고 설명한다.
  • 문맥을 떠난 인용: 이 구절을 떼어 내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정죄하는 근거로 쓰는 것은 교인 내부를 향한 경고라는 본래 문맥을 벗어난 인용이라는 지적이 있다.
  • 재림의 시기: 재림을 강조하는 설교에서는 '마라나타'가 임박한 재림을 말하는 근거로 인용되곤 한다. 이에 대해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른다는 마가복음 13:32과 함께 읽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교회에서

'마라나타'는 한국 교회에서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나타내는 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찬양 제목이나 교회·모임 이름에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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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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