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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노리우스 1세(?~638)는 625년부터 638년까지 재위한 로마 주교(교황)이다. 그리스도의 의지를 하나로 보는 듯한 서신 때문에 사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생애

호노리우스 1세는 이탈리아 캄파니아 지방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생 연도는 확실하지 않다. 625년 로마 주교, 곧 교황에 올라 63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재위하였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이탈리아는 동로마 제국의 영향 아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재위기는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와 교회 지도자들과 긴밀하게 얽혀 있었다.

사역과 업적

재위 기간에 그는 로마 시내의 여러 교회 건물을 보수하고 새로 지었다. 또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 선교를 지원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이름이 교회사에 남은 것은 주로 단의론(單意論) 논쟁 때문이다. 단의론은 그리스도 안에 의지가 하나뿐이라는 주장이다. 칼케돈 공의회(451년)는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 두 본성을 지닌다고 고백하였다. 그 뒤 동로마 제국은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은 집단과 화해할 길을 찾았고,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은 둘이지만 의지는 하나라는 절충안이 나왔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세르기우스 1세가 이 문제를 묻는 편지를 보내자, 호노리우스는 그리스도 안의 "한 의지"를 인정하는 듯한 답신을 보냈다. 이 답신은 이후 단의론을 지지하는 근거로 쓰였다.

사후 정죄

680~681년 열린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그리스도 안에 신적 의지와 인간적 의지가 함께 있다는 양의론(兩意論)을 정통 교리로 확정하였다. 이 공의회는 세르기우스 등과 함께 호노리우스도 정죄하였다. 이후 교황 레오 2세는 공의회 결정을 승인하면서, 호노리우스가 이단을 막지 못하고 방치한 잘못을 지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호노리우스가 한국 교회와 직접 관련된 활동을 한 것은 없다. 다만 기독론(그리스도에 관한 교리)의 역사나 교황권 문제를 다룰 때 사례로 소개되곤 한다.

평가

그에 대한 평가는 교회 전통에 따라 다르다.

  • 천주교 쪽에서는 그의 서신이 교황이 공식적으로 교리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사적인 목회 서신이었다고 본다. 또 그가 말한 "한 의지"는 인간적 의지가 신적 의지에 거스르지 않는다는 도덕적 일치를 뜻했다는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 정교회는 그를 공의회가 정죄한 인물로 기억한다.
  • 개신교 쪽에서는 그의 사례를 교황도 교리에서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근거로 들어 왔다. 이 사례는 19세기 천주교의 교황 무류성(교황이 공식적으로 신앙과 도덕에 관해 선포할 때 오류가 없다는 교리) 논의 때 특히 많이 거론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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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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