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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마틴(Henry Martyn, 1781~1812)은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이자 인도와 페르시아에서 일한 선교사다. 신약성경을 우르두어·페르시아어·아랍어로 옮겼다.

생애

1781년 영국 콘월의 트루로에서 태어났다. 트루로 그래머스쿨과 케임브리지 대학교 세인트존스 칼리지에서 공부했고, 수학 성적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학 시절 찰스 시메온을 만난 일이 선교에 뜻을 두는 계기가 되었다. 잉글랜드 성공회 사제가 된 뒤에는 케임브리지 홀리트리니티 교회에서 시메온의 부목사로 일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에게 선교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고 깊은 감화를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물려받은 집안 재산을 잃으면서 누이를 부양해야 했다. 선교사 사례비보다 수입이 많은 영국 동인도회사의 군목(채플린, 군인과 회사 직원을 돌보는 성직자) 자리를 받아들여 인도로 갔다. 인도에서 몇 해를 일하는 사이 건강이 크게 나빠졌다. 그래서 건조한 아라비아와 페르시아(지금의 이란)를 거쳐 귀국하기로 했는데, 이 길에서 아랍어·페르시아어 번역을 현지에서 검증하려는 목적도 있었다. 귀국길에 고열에 시달리다 1812년 10월 16일 토카트에서 31세로 세상을 떠났고, 그곳에 묻혔다. 평생 결혼하지 않았다.

사역과 업적

  • 성경 번역: 인도에 머문 약 6년 동안 신약성경을 우르두어(힌두스타니어), 페르시아어, 아랍어로 옮겼다.
  • 무슬림 선교: 흔히 "무슬림을 향한 개신교 개척 선교사"로 불린다. 셰이크 살리(뒷날 압둘 마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압둘 마시는 인도 무슬림 출신으로 처음 성공회 성직자가 된 사람이다.
  • 군목 사역: 영국 군인을 위해 병원 심방과 장례 예식을 맡았다. 숙소의 큰 방을 예배 공간으로 꾸며 쓰기도 했다.
  • 일기: 그가 죽은 뒤 일기와 전기가 출간되었다. 영어권에서 여러 세대 선교 지원자들이 읽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마틴은 한국 개신교 선교가 시작되기 70여 년 전에 세상을 떠났으므로 한국과 직접 관계는 없다. 한국 교회에는 주로 번역된 전기와 일기를 통해 알려졌다. 『헨리 마틴의 생애와 일기』는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로 나왔고, 리처드 프랑스가 쓴 전기는 김기찬 번역으로 CH북스에서 출간되었다. 이런 책에서는 헌신과 기도의 본보기로 소개되며, 브레이너드와 함께 "제2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로 불리기도 한다.

평가

성공회에서는 10월 19일에 그를 기념한다. 개신교 복음주의 전통에서는 학문적 재능을 선교와 성경 번역에 바친 인물로 높이 평가한다. 생전에 직접 얻은 개종자는 몇 명에 그쳤지만, 그가 남긴 번역과 일기가 후대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고 본다.

다만 그는 식민 통치 기구인 동인도회사에 고용된 군목이었다. 그래서 식민주의와 선교의 관계를 살필 때 이 신분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함께 보기 7

참고한 자료 5곳
  1. Henry Martyn - Wikipedia
  2. Henry Martyn: pioneer missionary - Evangelical Times
  3. Martyn, Henry - Dictionary of Christian Biography in Asia
  4. 헨리 마틴 - 인도어와 페르시아어로 성경을 번역한 선교사 (라이프북)
  5. 세계기독교고전40 헨리 마틴의 생애와 일기 (기독교백화점)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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