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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와 선교

역사

식민주의와 선교는 15세기 이후 유럽의 해외 팽창과 기독교 선교가 서로 얽혀 진행된 역사적 관계를 말한다. 그 관계를 둘러싼 비판과 재평가도 함께 가리킨다.

배경

식민주의는 한 나라가 다른 지역을 정치적·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체제를 말한다. 15세기 말부터 유럽 나라들이 바다 건너로 진출했고, 기독교 선교도 같은 시기에 같은 길을 따라 퍼져 나갔다. 교황 니콜라오 5세의 칙서 「로마누스 폰티펙스」(1455)는 포르투갈 국왕에게, 알렉산데르 6세의 칙서 「인테르 체테라」(1493)는 스페인 국왕에게 새로 간 땅의 선교를 후원하고 교회를 관할할 권리를 주었다. 이 권리를 포르투갈에서는 파드로아두, 스페인에서는 파트로나토라고 부른다. 그래서 초기 천주교 선교사들은 국왕의 후원을 받아 상인과 군대가 가는 길을 따라 들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전개

  • 19세기 개신교 선교의 확대: 개신교 선교가 세계 곳곳으로 크게 늘어난 이 시기를 흔히 위대한 선교의 세기라고 부른다. 선교 지역의 상당수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이거나 그 영향 아래 있었다.
  • 1858년 톈진 조약: 제2차 아편전쟁 중 중국이 열강과 맺은 톈진 조약에는 선교사가 자유롭게 포교할 권리와 중국인 신자를 보호하는 조항이 들어갔다. 미국과 맺은 조약의 이 조항은 미국 공사관 통역으로 협상에 참여한 전직 선교사 새뮤얼 웰스 윌리엄스가 초안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로교 선교사 윌리엄 마틴도 이 일에 관여했다. 전쟁 끝에 맺은 조약으로 포교의 길이 열렸기 때문에, 중국에서 기독교는 오랫동안 '외국 세력의 종교'라는 반감을 샀다. 이 반감은 1900년 의화단 운동 때 신자와 선교사가 공격받는 일로까지 이어졌다(중국 교회 역사).
  • 1884~1885년 베를린 회의: 열강이 아프리카를 나누어 가지는 규칙을 정한 회의다. 이 회의의 일반의정서는 원주민을 보호한다는 조항과 함께 기독교 선교사·과학자·탐험가를 특별 보호 대상으로 정했다. 선교 단체를 보호하는 이유로는 원주민을 가르쳐 '문명의 이점'을 알게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한국의 경우

한국 개신교 선교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 호러스 알렌(1884)과 호러스 언더우드·헨리 아펜젤러(1885)가 들어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을 식민지로 삼은 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닌 일본이었고, 선교사는 대부분 미국·캐나다·호주 출신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기독교가 식민 권력과 같은 편으로 여겨지기보다 민족운동과 이어졌다는 평가가 많다(3·1운동과 기독교). 반면 선교사들이 '교회는 정치에 끼어들지 않는다'는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워 일제 통치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도 있다.

결과와 영향

20세기 중반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가 독립하면서, 선교는 서구 문명을 퍼뜨리는 일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는 요구를 받았다. 선교학(선교를 연구하는 학문)에서는 현지 교회가 스스로 서는 일과 복음을 현지 문화의 말로 표현하는 토착화가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천주교에서는 2023년 3월 교황청이 15세기 칙서들에 기대어 온 '발견의 원칙'을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발견의 원칙은 기독교 국가가 먼저 '발견한' 땅에 대해 주권을 가진다는 논리다. 교황청은 그 칙서들이 원주민의 동등한 존엄과 권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이는 캐나다 원주민을 비롯한 여러 원주민 공동체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일이었다.

평가

  • 비판하는 쪽: 선교가 식민 지배에 도덕적 명분을 주었다고 본다. 또 현지 문화를 열등하게 보고 서구식 생활 방식을 강요했다고 지적한다. 주로 탈식민주의 연구자들과 옛 피식민지 출신 신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해 왔다.
  • 다르게 보는 쪽: 선교사들이 현지어 성경 번역, 학교, 병원을 통해 현지인이 근대 교육을 받고 민족의식을 키우는 통로가 되었다고 본다. 이들은 선교사가 때로 식민 당국의 착취를 고발하기도 했다는 점도 든다. 감비아 출신 선교학자 라민 사네는 성경을 현지어로 옮긴 일이 오히려 토착 언어와 문화를 되살렸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오늘날 많은 연구는 선교와 식민주의를 하나로 묶거나 완전히 떼어 놓기보다, 지역과 시기와 선교 단체에 따라 관계가 달랐다고 본다.
  • 한국이 선교사를 많이 보내는 나라가 된 뒤로, 한국 교계 안에서도 해외 선교가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지, 경제력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돌아보자는 목소리가 나온다(한국 교회 선교사 파송).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9곳
  1. Treaties of Tianjin (Britannica)
  2. Treaty of Tianjin (Tien-tsin), 1858 (USC US-China Institute)
  3. A Dilemma between Politics and Evangelism: S. Wells Williams' Controversial Translation of the "Toleration Article"
  4. Hudson Taylor & Missions to China: Did You Know? (Christian History Institute)
  5. General Act of the Berlin Conference on West Africa, 26 February 1885
  6. Berlin Conference (Encyclopedia.com)
  7. Catholics missions (BnF)
  8. The Vatican repudiates 'Doctrine of Discovery' (OPB)
  9. The Doctrine of Discovery (Canadian Museum for Human Rights)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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