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든버러 선교대회
역사
에든버러 선교대회는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개신교 선교 단체 대표자 회의이다. 세계 선교의 협력 방안을 논의했으며, 흔히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배경
19세기 개신교 선교는 교파별·나라별 단체가 따로 움직여 선교지에서 활동이 겹치는 일이 많았다. 이를 조정하려는 국제 선교 대회가 1888년 런던, 1900년 뉴욕에서 열렸다. 이어 1907년 1월 글래스고에 모인 스코틀랜드 선교 단체 대표들이 1910년 6월 에든버러에서 다음 대회를 열기로 결의했다. 준비는 두 사람이 주도했다. 한 사람은 미국 감리교 평신도로서 학생자원운동(SVM)을 이끈 존 모트(John R. Mott)이고, 다른 한 사람은 전임 총무를 맡은 스코틀랜드인 조지프 올덤(J. H. Oldham)이다. 모트의 구호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가 대회의 분위기를 보여 준다. 모트는 1907년 한국을 방문해 평양 대부흥을 직접 보기도 했다.
전개
대회는 1910년 6월 14일부터 23일까지 스코틀랜드 연합자유교회 총회 회관에서 열렸다. 160여 개 선교 단체의 대표 약 1,200명(기록에 따라 1,215명)이 참석했으며, 대표 수는 단체별 선교비 규모 등에 따라 배정되었다. 개신교와 성공회 계열 단체만 참여했고, 천주교와 정교회 쪽 선교 단체는 초청되지 않았다. 비서구 출신 대표는 20명이 채 되지 않았다.
회의는 약 2년 동안 준비한 8개 분과위원회의 보고서를 토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제1분과는 비기독교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문제를, 제8분과는 협력과 일치를 다루었다. 이 대회는 각 선교 단체를 구속하는 결정을 내리는 기구가 아니었다. 공동의 생각을 모으는 협의(協議, 함께 의논함) 모임이었다. 6월 21일 제8분과가 대회 뒤의 일을 이어 갈 계속위원회(Continuation Committee)를 두자고 제안했고, 대회는 이를 만장일치로 받아들였다.
한국 관련
한국 선교지를 대표해 에비슨, 질레트 등 선교사를 중심으로 15명가량이 참석했고, 한국인은 윤치호 한 사람뿐이었다. 윤치호는 선교사들의 수고를 높이 평가하면서도, 현지 교회의 기초를 다지지 않은 채 지나치게 빠르게 개종이 이루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고 연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뒤에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었다.
결과와 영향
계속위원회는 모트와 올덤의 책임 아래 활동하며 선교학 학술지 『International Review of Missions』를 펴냈고, 1921년 국제선교협의회(IMC)로 발전했다. IMC는 1961년 뉴델리에서 세계교회협의회(WCC)와 통합되었다. 이러한 흐름 때문에 에든버러 대회는 흔히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교회 연합·일치 운동)의 출발점으로 꼽힌다.
100주년인 2010년에는 6월 2~6일 에든버러에서 기념대회가 열렸다. 같은 해 10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열린 제3차 로잔 대회에도 복음주의 진영이 에든버러 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뜻이 담겼다.
평가
에큐메니칼 진영은 이 대회를 교파를 넘어선 협력의 출발점이자 WCC의 뿌리로 본다. 복음주의 진영은 이 대회가 보여 준 세계 복음화를 향한 선교 열정을 이어받았다고 보며, 로잔 운동을 그 흐름 속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두 진영이 이 유산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문제가 WCC 논쟁과도 맞물려 있다.
비판적 평가도 있다. 서구 교회의 자신감과 낙관론 속에서 영미권이 대회를 주도했으며, '세계' 대회라는 이름과 달리 실제로는 서구가 일방적으로 이끌었다는 지적이다. 남인도 교회 지도자 아자리아(V. S. Azariah)의 발언이 이런 비판의 근거로 자주 인용된다. 한국 교회도 '어린 교회'로서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한편 당시 변방이던 아시아·아프리카·남미 교회가 오늘날 세계 기독교의 중심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 대회는 그 변화를 되돌아보는 기준점으로 언급된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18곳
- 1910년 세계선교대회 - 위키백과
- 1910 World Missionary Conference - Wikipedia
- The 1910 World Missionary Conference, which was held in Edinburgh - Musée protestant
- World Missionary Conference Records, 1883-2010 - Columbia University Libraries
- World Missionary Conference, 1910 [Reports of Commissions I-VIII] - AbeBooks
- 20세기 전반기 개신교 세계 선교·연합 운동 설계자 - 뉴스앤조이
- 역사상 최대 교회를 일군 한국 오순절 운동의 대표자 - 뉴스앤조이
- [YMCA, 새로운 100년의 약속] (11) 한국 YMCA를 만든 선교사들 (下) - 국민일보
- [교회사를 바꾼 30대사건] 에딘버러 세계 선교대회 (1910년) - 미주중앙일보
- 에딘버러 선교사대회와 평신도 전문인 선교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와 그 이전의 발자취 (1792-1910)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 '이 세대 안에 세계 복음화를!'의 현실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 1910 에딘버러 선교대회 이후 복음주의 선교역사에 대한 고찰 - 한국학술지인용색인
-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사대회 100년 평가 - DBpia
-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 - 기독교한국침례회 신학용어사전(kcm.kr)
- Missiological conference - Centenary of the International Missionary Council - WCC
- History - CWME, World Council of Churches
- "에반젤리칼과 에큐메니칼의 싸움, 한국에서 끝내자" -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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