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르나 문서
역사
아마르나 문서는 1887년 이집트 텔 엘아마르나에서 발견된 점토판 서신 모음이다. 기원전 14세기 중엽 이집트 왕실이 고대 근동 강대국과 가나안 도시국가 통치자들과 주고받은 것으로, 쐐기문자로 적혀 있다.
배경
기원전 14세기 이집트 신왕국의 파라오 아멘호텝 4세는 이름을 아크나톤으로 바꾸었다. 그는 태양 원반 신 아톤 숭배를 앞세우고 나일강 중류에 새 수도 아케타텐을 세웠다. 이 도시 터가 오늘날의 텔 엘아마르나이며, 문서 이름도 여기서 나왔다.
당시 이집트는 가나안과 시리아 남부의 도시국가들을 봉신(이집트에 충성하는 속국 통치자)으로 거느렸다. 주변에는 미탄니·히타이트·바벨론·앗수르 같은 강대국이 있었다. 이들 사이의 외교에서는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어를 쐐기문자(점토에 쐐기 모양을 새겨 쓰는 문자)로 적는 것이 관례였다.
발견과 전개
- 1887년: 아마르나 인근 주민이 점토판을 우연히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점토판은 골동품 시장을 거쳐 흩어졌고, 지금은 베를린, 런던 대영박물관, 카이로 이집트박물관 등에 나뉘어 있다.
- 1891~1892년: 영국 고고학자 플린더스 피트리가 아마르나를 발굴해 점토판을 추가로 찾아냈다.
- 1907~1915년: 노르웨이 학자 크누트손이 판본을 펴냈다. 그가 붙인 'EA' 번호가 지금도 표준으로 쓰인다.
알려진 점토판은 380여 점이다. 대부분이 편지이고, 아멘호텝 3세 말기부터 아크나톤 치세에 이르는 수십 년 사이의 것으로 본다. 편지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 강대국 서신: 강대국 왕들이 파라오를 '형제'라 부르며 혼인과 금·예물 교환을 논했다.
- 봉신 서신: 가나안·시리아 통치자들이 충성을 맹세하면서 이웃 통치자를 고발하고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비블로스의 리브하다는 60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루살렘(문서 표기 '우루살림')의 압디헤바, 세겜의 라바유, 므깃도의 비리디야도 등장한다. 여러 편지에는 '하비루'(아피루)라 불린 무리가 질서를 어지럽힌다는 호소가 담겨 있다.
결과와 영향
- 외교사: 고대 근동 강대국들이 서로를 대등하게 대한 국제 질서를 보여 주는 자료다.
- 언어사: 가나안 서기관들은 아카드어에 자기 말의 낱말과 문법을 섞어 썼다. 그래서 히브리어와 가까운 고대 가나안 말을 연구하는 단서가 된다.
- 성경 배경: 당시 가나안이 작은 도시국가들로 나뉘어 있었다는 점, 예루살렘이 그때 이미 이 이름으로 존재했다는 점이 자주 인용된다.
평가
가장 많이 논의된 것은 하비루와 히브리인의 관계다. 두 이름의 발음이 비슷해서 초기 연구자 가운데 둘을 같은 집단으로 본 이들이 있었다.
열왕기상 6:1을 근거로 출애굽을 기원전 15세기로 보는 '이른 연대설'이 있다. 이 견해를 따르는 일부 보수 성경학자는 하비루의 활동을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과 연결해 설명한다.
출애굽을 기원전 13세기로 보는 '늦은 연대설' 쪽과 다수 학자는 다르게 본다. 하비루라는 말은 근동 여러 지역 문헌에 수백 년에 걸쳐 나타난다. 그래서 이들은 하비루를 특정 민족이 아니라 유랑민·용병 같은 사회 계층을 가리키는 말로 보고, 아마르나 문서를 이스라엘 정착 이전의 가나안을 보여 주는 자료로 이해한다.
어느 견해를 따르든 아마르나 문서가 구약성경의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중요한 1차 사료라는 데에는 이견이 적다.
함께 보기 8
토론 0
이 문서에 대한 의견, 다른 관점, 고칠 점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