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폰 하르낙
인물 · 같은 말: 하르낙
아돌프 폰 하르낙(1851~1930)은 독일의 개신교 신학자이자 교회사가이다. 『교리사 교본』과 『기독교의 본질』을 썼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꼽힌다.
생애
1851년 5월 7일 러시아 제국 리보니아 지방의 도르파트에서 태어났다. 도르파트는 지금의 에스토니아 타르투이다. 아버지는 신학 교수 테오도시우스 하르낙이다. 1873년 라이프치히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어 영지주의 연구로 교수 자격을 얻었다. 1879년 기센 대학교 정교수가 되었고 1886년 마르부르크 대학교로 옮겼다. 1888년에는 베를린 대학교로 갔는데, 이때 보수적인 교회 당국이 크게 반대했다. 1921년 은퇴했고 1930년 6월 10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주로 교회사와 교리사(교리가 생겨나고 바뀌어 온 역사)를 연구했다. 대표작은 『교리사 교본』(3권, 1886~1890)이다. 이 책에서 그는 기독교 교리를 예수의 복음이 그리스 철학 정신과 만나 생겨난 산물로 보았고, 이 과정을 '헬라화'(그리스화)라고 불렀다. 교부(초대 교회 지도자)들의 글을 원문 비평을 거쳐 펴내는 총서도 창간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은 『기독교의 본질』(1900)이다. 1899~1900년 겨울 학기에 베를린 대학교에서 모든 학부 학생을 상대로 한 16차례 강연을 묶었다. 그는 복음의 핵심을 다음 세 가지로 요약했다.
그리고 역사 속에서 생겨난 교리와 제도는 이 알맹이를 감싼 껍질로 보았다. 알브레히트 리츨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로 꼽힌다.
베를린 시절에는 사도신경을 목사 안수 후보자의 신앙 고백 기준으로 삼는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 휘말렸다. 그는 사도신경 대신 더 짧은 신앙 선언을 기준으로 삼자는 입장이었다.
학술 행정에서도 활동했다. 1905~1921년 왕립도서관 총관장을 지냈다. 1911년에는 그의 제안으로 카이저 빌헬름 협회(지금의 막스 플랑크 협회)가 세워졌고, 그는 초대 회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끌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한국에서는 주로 자유주의 신학과 교리사 연구를 대표하는 학자로 소개된다. 『기독교의 본질』은 2007년 한들출판사에서 오흥명의 번역으로 나왔다. 국내 신학계에서도 이 책을 중심으로 그의 복음 이해를 분석하는 연구가 나오고 있다.
평가
초대 교회 문헌과 교리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공로는 널리 인정된다. 그를 지지하는 쪽은 교리를 역사적 발전으로 이해하려 한 그의 시도가 현대 세계에서 기독교가 지니는 의미를 새로 묻게 했다고 본다.
비판도 적지 않다. 백충현은 2020년 『신학논단』에 실은 논문에서 하르낙의 복음 이해가 지나치게 단순하고 환원론적(복잡한 내용을 몇 가지 요소로만 줄여 설명하는 태도)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기독론과 삼위일체 교리를 지나치게 단순화했다고 지적했다. 또 교리 발전을 '헬라화'로 본 그의 관점과 달리, 초대 교회가 이룬 신학적 종합을 오늘날 되찾아야 할 '위대한 전통'으로 보는 흐름도 생겨났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11곳
- Adolf von Harnack (Britannica)
- Harnack, Adolf von (Encyclopedia.com)
- Adolf Harnack (New World Encyclopedia)
- Biografie, Adolph von Harnack (훔볼트대학교 소장품)
- LeMO Biografie – Adolf von Harnack (독일역사박물관)
- Das Wesen des Christentums (Mohr Siebeck)
- Adolf von Harnack (Wikipedia)
- 아돌프 폰 하르낙의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고찰 (KCI)
- 기독교의 본질 (교보문고)
- 모두를 위한 '새로운 신학'은 가능할까? (뉴스앤조이)
- 아돌프 폰 하르낙 (다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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