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편 9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시편 137:9,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 바벨론 강가에서, 저주 시편
네 어린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
본문은 보호 기간이 끝난 개역한글판(1961)입니다. 개역개정·새번역 등 다른 번역본과는 낱말이 조금 다를 수 있습니다.
바벨론 포로의 슬픔을 노래한 시편 137편의 마지막 절로, 원수의 어린아이를 바위에 메어치는 자가 복되다고 말한다. 성경에서 가장 당혹스러운 구절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이른바 '저주 시편'을 어떻게 읽을지 논의할 때 대표로 거론된다.
문맥
시편 137편은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멸망한 뒤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노래이다. 바벨론의 강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는 말로 시작하고(1절), 포로로 잡아 온 사람들이 시온의 노래를 부르라고 조롱하자 수금을 버드나무에 걸었다고 한다(2-3절). 5-6절은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는 맹세이다. 7절에서는 예루살렘이 무너지던 날 "헐어 버리라"고 외친 에돔을, 8-9절에서는 바벨론을 향해 갚음을 구한다. 9절은 전쟁에서 정복자가 어린아이까지 죽이던 당시의 참상을 그대로 되돌려 말한 것이다.
해석
- 고난 속의 정직한 탄식으로 읽기: 시인은 직접 복수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분노를 하나님 앞에 그대로 쏟아 놓고 심판을 맡긴다고 본다. 이 시편은 기도가 경건한 말만이 아니라 상처와 분노까지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설명한다.
- 공의의 호소로 읽기: 받은 대로 갚는다는 동해보복 원칙에 따라, 예루살렘에 행한 대로 바벨론도 받게 해 달라는 공의의 요청으로 본다. 이사야 13:16 등 바벨론 심판 예언과 연결한다.
- 비유적 읽기: 교부 시대에는 '어린 것'을 마음에 막 싹튼 악한 생각으로, '반석'을 그리스도로 보아, 죄의 싹을 일찍 그리스도께 부딪쳐 없애라는 뜻으로 읽은 전통이 있다.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런 해석을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논쟁과 쟁점
저주 시편(시편 35, 69, 109편 등)을 기독교인이 기도로 쓸 수 있는지가 오래된 물음이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마태복음 5:44)과 맞지 않는다고 보아 예배에서 읽지 않는 쪽이 있는가 하면, 복수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곧 스스로 원수를 갚지 않는 길(로마서 12:19)이므로 정직한 기도로 남겨 두어야 한다는 쪽도 있다. 성경 영감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시인의 감정을 기록한 것인지 하나님의 승인을 담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도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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