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조
인물
서경조(徐景祚, 1852~1938)는 평안도 의주 출신의 초기 한국 개신교인이자 장로교 목사이다. 형 서상륜과 함께 황해도 소래교회를 세웠고, 1907년 한국인 최초로 목사가 된 일곱 사람 가운데 하나이다.
생애
1852년 평안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상우(相佑)이다. 자(字, 본이름 대신 부르던 이름)인 경조를 계속 쓰다가 나중에 이름을 경조로 바꾸었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손에서 자랐으며, 혼자 한학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 서상륜을 따라 장사를 하다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서상륜은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를 만나 개신교로 회심하고 성경 번역을 도운 사람이다.
형제는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 곧 소래(솔내) 마을로 옮겨 가 복음을 전했다. 이곳은 외가가 있던 곳으로 전한다. 1887년 1월 23일 서경조는 소래 교인 최명오·정공빈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호러스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았다. 1901년부터 평양 장로회신학교에서 공부했다. 1907년 첫 졸업생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졸업했고, 같은 해 독노회에서 길선주·이기풍 등과 함께 목사로 안수를 받았다. 그 뒤 서울 새문안교회 등에서 목회했다. 만년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아들 서병호를 따라 중국 상하이로 건너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8년에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소래교회 설립과 목회: 형과 함께 소래교회를 세웠다. 서상륜이 서울로 활동 무대를 옮긴 뒤에는 서경조가 교회를 맡아 이끌었다. 마을 58가구 가운데 50가구쯤이 교회에 나올 만큼 교회가 커졌다고 전한다. 1895년 8칸짜리 기와 예배당을 지었고, 이듬해 16칸으로 늘려 지었다. 이 건축에서도 서경조가 큰 몫을 했다.
- 초기 세례와 조직교회의 바탕: 1887년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은 초기 교인 대부분이 소래교회 사람들이었다. 같은 해 9월 서울에 세워진 정동교회(뒤의 새문안교회)도 이들이 주축이 되었다. 그해 가을 언더우드는 소래를 찾아가 세 살이던 서경조의 아들 병호에게 유아세례를 베풀었다. 이를 한국 개신교 최초의 유아세례로 보는 자료가 있다.
- 장로 직분: 소래교회의 장로가 되어 황해도 일대(해서 지방)의 교회 개척과 전도에 힘썼다. 그를 한국 최초의 장로로 소개하는 자료도 있다. 다만 최초 장로가 누구인지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혀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소래교회는 외국 선교사가 들어와 세운 교회가 아니라 한국인이 스스로 세운 '자생 교회'로 평가된다. 그래서 서경조는 한국 개신교가 처음 뿌리내린 과정을 보여 주는 대표 인물로 꼽힌다. 또 조선예수교장로회가 처음 세운 한국인 목사 일곱 명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선교사 중심이던 교회가 한국인 목회자가 이끄는 교회로 넘어가는 첫 세대에 속한다. 아들 서병호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해방 뒤에는 교육자로 활동했다.
평가
서경조는 서상륜과 함께 한국 장로교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1980년대 한국 기독교 100주년 사업 때 대한예수교장로회 황해노회는 소래교회를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에 복원했다. 다만 소래교회를 세운 해는 1883년(5월 16일), 1884년 등으로 자료마다 다르다. 그래서 '최초의 교회'라는 평가와 설립 연대는 연구자에 따라 달리 보는 부분이 있다. 서경조 개인에 대한 뚜렷한 비판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7곳
- 서경조 (목회자) - 위키백과
- 소래교회 - 위키백과
- 황해도 소래교회 - 한국 최초의 '자생교회' (인천in)
- [대부흥과 성경번역3] 성경 반포와 더불어 서북지역에 놀랍게 복음이 전파 (평양대부흥)
- [북한교회사(72)] 황해도 교회사(37) (가스펠투데이)
- 선교의 자유와 초기 선교활동 (1885~1906) - 개혁주의 마을
- 새문안교회 역사 이야기 (조갑제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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