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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호

인물 · 같은 말: 徐丙浩, 조카이자 양자 서병호

서병호(徐丙浩, 1885~1972)는 황해도 장연 소래 출신의 장로교 장로이자 독립운동가·교육자이다. 한국 개신교 최초의 유아세례 수세자로 알려져 있고, 상하이에서 신한청년당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에 참여했다.

생애

1885년 황해도 장연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대구이고, 호는 송암(松嵒)이다. 아버지 서경조는 한국 장로교에서 처음 안수받은 목사 7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서병호는 서경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큰아버지 서상륜의 양자가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상륜·서경조 형제는 한국인이 스스로 세운 초기 개신교 교회로 꼽히는 소래교회를 일으킨 인물들이다.

서경조가 서울에서 선교사 호러스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을 때 어린 서병호도 함께 세례를 받았다고 전한다. 이후 언더우드는 1887년 소래를 찾아 그곳 신자들에게 세례를 베풀었다. 서병호는 이 일로 한국 개신교에서 처음으로 유아세례(스스로 신앙을 고백하기 어려운 어린아이에게 베푸는 세례)를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소래교회는 신앙교육과 함께 근대 학문을 가르쳤는데, 서병호도 이 교육을 받고 자란 인물로 꼽힌다. 정신여학교에서 공부한 김구례와 결혼했으며, 김규식의 부인 김순애와 김필례가 그의 처제이다.

광복 뒤인 1947년에 귀국했고, 1972년에 세상을 떠났다. 처음에는 경기도 구리의 망우리 공원묘지에 묻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사역과 업적

중국 상하이에서 여운형·김철·조소앙·조동호 등과 함께 신한청년당을 조직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진 뒤에는 임시의정원에서 활동했다. 국내로 몰래 들어와 동지들과 연락하고 독립자금을 모으는 일도 맡았다고 한다. 또 대한적십자회를 세우는 데 참여했다. 난징·미주·하와이 등지에서 모은 돈으로 간도 지방에 있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을 도왔다.

교육과 교포 사회 일에도 힘을 쏟았다. 1923년 상하이에 남화학원을 세웠고, 1933년에는 상하이 인성학교 이사장을 지냈다. 상해 한인 기독교청년회와 한교협회의 이사장도 맡았다. 1926년 이후에는 아버지 서경조도 상하이로 건너와 아들과 함께 여생을 보냈다.

귀국한 뒤에는 새문안교회 장로로 섬겼다. 서울 중앙기독청년회(한국 YMCA) 이사와 경신학교 이사를 지냈고, 1950년 경신학교 이사장이 되었다. 경신중학교 교장을 지냈다는 기록도 있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서병호 집안은 소래교회에서 시작해 서울 새문안교회로 이어지는 초기 장로교의 흐름을 보여 준다. 그는 한국인의 자생적 신앙 공동체에서 태어나 선교사에게 세례를 받은 첫 세대였다. 이후 독립운동과 기독교 교육, 교회 봉사로 생애를 이어 갔다. 이 때문에 한국 개신교 역사에서 초기 신앙 가문의 신앙이 민족운동과 교육으로 이어진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아들 서재현도 독립운동가로 건국훈장을 받았다.

평가

한국학 자료와 지역 문화 사전은 그를 장로교 장로이자 독립운동가이며 교육가였던 인물로 소개한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인물록에도 그의 이름이 실려 있다. 그에 대한 뚜렷한 비판이나 논쟁은 널리 알려진 것이 없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8곳
  1. 서병호 (1885년) - 위키백과
  2.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역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 KRpia
  3. 서병호 - 디지털구리문화대전
  4. 서경조 (목회자) - 위키백과
  5. 서상륜 - 위키백과
  6. [북한교회사(72)] 황해도 교회사(37) - 가스펠투데이
  7. [역사기획/ 사적지 지정을 앞둔 교회] (45)소래교회 예배당 - 주간기독신문
  8. 소래 김성섬 집사는 어떻게 신앙 명문가를 이루었을까? - 기독일보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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