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1장 2절
성경 구절 · 같은 말: 로마서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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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이스라엘 다수의 불신 앞에서도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밝히고, 엘리야의 예를 끌어오는 구절. 하나님의 '미리 아심'의 뜻과 이스라엘의 장래를 둘러싼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문맥
사도 바울은 로마의 교회에 보낸 편지 로마서 9~11장에서 한 가지 물음을 다룬다. 이스라엘(유대인) 대부분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약속이 실패한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11장 1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자신이 베냐민 지파의 이스라엘인이라는 점을 들어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2절은 이 대답을 이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고 단언하고, 그 증거로 엘리야 이야기를 꺼낸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는 시편 94:14와 사무엘상 12:22의 표현이 이 말의 배경으로 흔히 거론된다.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은 헬라어를 직역하면 "엘리야에서"이다. 성경의 한 단락을 그 단락의 주요 인물 이름으로 부르던 당시 유대인의 인용 방식으로 설명된다. "송사하되"는 '고발하여 호소하되'라는 뜻이다. 열왕기상 19장에서 엘리야는 이스라엘이 선지자들을 죽이고 제단을 헐었다고 하나님께 호소하는데, 이 구절은 그 장면을 가리킨다. 바울은 3~4절에서 엘리야의 호소와,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는 하나님의 응답을 인용한다. 이어 5절에서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고 결론짓는다.
해석
읽기가 갈리는 지점은 "미리 아신"(헬라어 프로에그노, '미리 알다')과 "자기 백성"이 무엇을 가리키느냐이다.
- 민족 전체로 보는 읽기: 많은 주석가는 1절의 질문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두고 한 것이므로, 2절의 "자기 백성"도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라고 본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미리 알고 택하셨기에 지금의 불신에도 버리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읽는다. 이 읽기는 같은 장 28~29절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와 연결된다.
- 남은 자로 보는 읽기: 뒤따르는 엘리야와 남은 자 논증에 무게를 두는 읽기도 있다. 이 읽기는 "미리 아신 백성"을 이스라엘 안에서 택함받은 사람들로 좁혀 이해하며, 개혁주의 전통의 일부 해석자에게서 볼 수 있다.
- '미리 아심'의 뜻: 칼빈주의 쪽은 이 말을 단순한 예견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여 택하심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같은 동사가 쓰인 로마서 8:29와 같은 용법으로 보는 것이다.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웨슬리 신학 쪽은 이 말을 하나님의 예지와 공동체적 선택으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 구절을 개인의 운명이 미리 정해졌다는 근거로 읽는 데에는 신중하다.
논쟁과 쟁점
이 구절은 이스라엘의 장래를 다루는 논의에서 자주 인용된다. 세대주의는 하나님이 민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이 말을, 교회와 구별되는 이스라엘의 미래 회복을 뒷받침하는 본문으로 읽는다. 언약신학 쪽도 이 구절이 남은 자를 통해 약속이 이어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본다. 다만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 구원을 어떻게 볼지에서는 해석자마다 견해가 다르다. 장래에 유대인이 대규모로 회심한다는 뜻으로 보기도 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을 아우르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로 보기도 한다.
또 "버리지 아니하셨다"는 말을 개인의 구원의 확신이나 성도의 견인의 근거로 곧바로 옮겨 쓰는 경우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이 구절의 본래 문맥이 민족 이스라엘에 관한 논증이라는 점을 함께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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