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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용(1917~2006)은 한국기독교장로회 목사다. 경동교회를 함께 세웠고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세워 대화운동과 종교 간 대화를 이끌었다. 호는 여해(如海)다.

생애

1917년 7월 3일 함경남도 이원군의 유교 집안에서 태어났고, 보통학교 시절 개신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만주 북간도 용정의 은진중학교에서 윤동주, 문익환과 교유하며 스승 김재준을 만났다. 일본에서 영문학을 공부한 뒤 만주에서 전도사로 일했고, 1944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해방 뒤 서울로 와 1945년 12월 김재준과 함께 경동교회를 세웠고, 김규식·여운형이 이끈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했다. 1948년 조선신학교(지금의 한신대학교)를 졸업하고 1949년 목사 안수를 받아 김재준의 뒤를 이어 경동교회를 맡았다. 1953년 캐나다로 유학했고, 뉴욕 유니언 신학교에서 사회윤리를 공부하며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에게 배웠다. 1957년 귀국해 1986년까지 경동교회에서 목회했고, 2006년 8월 17일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역과 업적

  • 크리스챤아카데미: 1959년 꾸린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회를 바탕으로 1965년 크리스챤아카데미를 세웠다. 처지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이야기하는 '대화운동'으로 사람다운 삶이 보장되는 사회, 곧 '인간화'를 추구했다. 1970년대에는 노동·농민·여성 운동 지도자를 길러 낸 '중간집단교육'을 했으나, 1979년 직원들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었다. 뒤에 대화문화아카데미로 이름을 바꾸었다.
  • 종교 간 대화: 1965년 국내 6대 종교 지도자가 처음 한자리에 모이는 모임을 열었고, 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 세계종교인평화회의 공동의장을 지냈다.
  • 교회 연합: 1966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1980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회장을 지냈고, 세계교회협의회(WCC) 중앙위원과 아시아기독교협의회 회장으로 활동했다.
  • 사회 활동: 1974년 민주회복국민회의 대표위원으로 유신 반대 운동에 참여했다. 방송위원회 위원장, 통일고문회의 의장을 지냈고 말년에는 평화포럼을 세웠다.

한국 교회에 끼친 영향

교회의 사회 참여를 목회와 운동으로 실천해 한국 에큐메니칼 운동과 기독교 사회운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한국 교회를 세계 교회의 흐름과 잇는 다리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평가

대화와 화해, 민주화에 헌신한 지도자로 평가받으며 니와노평화상(2000), 만해평화상(2002)을 받았다. 비판도 있다.

  • 1980년 신군부 아래서 국정자문위원을 맡는 등 군사정권에 협력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그는 위촉식 자리에서 전두환에게 김대중의 사형을 면해 달라고 건의했다고 회고했다.
  • 복음주의 쪽에서는 WCC 노선의 진보 신학과 지나친 정치 참여를 비판했고, 종교 간 대화도 일부 교계에서 종교다원주의라는 비판을 받았다.

함께 보기 8

참고한 자료 9곳
  1. 강원용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한국크리스찬아카데미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여해 강원용 - 대화문화아카데미
  4. 타계한 개신교계 '큰별' 강원용 목사 - 경향신문
  5. [김언호가 만난 시대정신의 현인들](14) - 경향신문
  6. 강원용의 사람들, 누가 있나? - 노컷뉴스
  7. '화해와 공존의 산실' 아카데미 운동 40주년 맞아 - 크리스천투데이
  8. 김명혁 목사 이중표·강원용·김준곤·정진경 목사를 회고하다 - 기독일보
  9. '어둠 밝힌 큰 별' 강원용 목사 영결식 - 한국일보

본문은 이 자료들을 참고해 새로 쓴 글이며, 자료의 글을 옮겨 싣지 않았습니다.

첫 글: AI 초안 · 마지막 수정 202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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